버려진 농기구 새가 되어 날다… 조각가 이영학 개인전

입력 2015-06-08 02:42
‘새’. 한약재를 써는 작두가 새의 몸통이, 작두 고리는 새 머리가 됐다. 이영학 조각가는 이렇듯 누군가의 노동 흔적이 밴 고철을 활용해 새를 만든다. 새 작업은 그런 노동에 보내는 위무의 손길이다. 현대화랑 제공

새 조각 100여점이 빼곡히 진열돼 마치 새의 군무를 보는 듯하다. 스펙터클한 대형 설치 작품이 범람하는 시대라 20∼70㎝ 높이의 아담한 새 조각은 편안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조각가 이영학(66)이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에서 8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금속 좌대 위에 서 있는 목을 길게 뺀, 가늘고 긴 형상의 조각은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지(1876∼1957)의 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브랑쿠지 조각의 매끈한 현대성과는 차이가 나는 고졸함과 동양성이 이영학의 조각에 있다. 놋쇠 등 전통적 재질도 그렇지만, 부러 깎고 다듬지 않고 원재료가 갖는 형태미를 한껏 살린 데서 연유하는 것 같다.

작품에 가까이 갔을 때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되는 건데, 조각 재료가 누군가 쓰던 일상의 연장이나 도구다. 농부가 쓰던 낫, 아낙의 인두나 부엌칼, 약재상의 작두, 조각가가 쓰던 조각칼, 목수의 장도리, 이제는 추억의 물건이 된 연탄재를 퍼 던 국자까지.

누군가의 손 때 묻은 물건들이 작가의 조형 감각에 의해 새 몸통으로 재탄생했다. 새 조각조각 마다 한 사람의 노동과 인생이 녹아 있다. 낡고 오래돼 폐기된 장삼이사의 도구와 연장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새 형상으로 부활한 것이다.

고물을 활용한 조각은 서울대 미대 조소과 재학시절 시작한 것이니 40여년 작가 인생을 관통해온 작업이다. 외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13년간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 가 고전적 인체 조각을 배웠다. 그래서 유명인사들의 두상 조각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지만 새 조각은 평생 놓아본 적이 없는 예술 작업의 고갱이다. 옛 돌을 활용해 만든 물확 작품(35점)과 새 드로잉 작품(60여점)도 같이 선보인다. 28일까지(02-2287-3591).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