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병모는 신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서 한국사회를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라고 규정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만큼 예기치 않은 곳에서 죽음이 기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대적 분위기가 그랬다. 흑사병이 휩쓸고 신·구교 갈등 속에서 탄생한 금욕주의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삶의 허무, 허영의 덧없음을 주제로 한 플랑드르 화가들의 ‘바니타스 회화’는 그런 시대 상황에서 비롯됐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모든 것이 헛되다(All Vanity)’는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삶과 죽음을 응시하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바니타스 회화를 모티브로 미디어아트,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의 국내외 작가 9명이 참여했다.
딱 5초. 피부가 탱탱한 소녀가 잔주름이 흉한 노파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병호(39) 작가는 ‘젊음의 유한성’을 표현하기 위해 석고상으로 보이게끔 한 실리콘 안에 에어펌프를 넣었다. 바람이 빠지며 젊음이 ‘5초 홍안’에 불과하도록 연출했다. 세월의 쏜살같음에 고개를 끄덕일 중년 관객이 많을 것 같다. 양정욱(33) 작가는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연작을 통해 이가 흔들려 불편한 노인의 먹는 행위, 주머니를 뒤져 뭔가를 찾는 행위 등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설치 조각으로 추상화했다.
호주작가 샘 징크(42)의 설치 작품은 명작을 패러디해 죽음을 마주하게 한다. 중년 남자가 죽은 노인을 안은 채 내려다보고 있는 인형은 성모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5일 전시장에서 기자와 만나 “젊은 자신이 늙어서 죽은 자신을 안고 있는 것”이라며 “살아가면서 죽음을 응시하자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실리콘 인형이 진짜 사람 피부처럼 정교해 작품 앞에 서면 선득해지는 기분이 든다.
권력과 부의 덧없음도 바니타스 회화의 주된 주제였다. 그때는 책(지식)이 권력과 명예를 상징했다면, 지금은 미디어가 이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는 정확한 전달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 미디어아트 작가 짐 캠벨(59)은 미디어가 갖는 의도화, 즉 왜곡과 과장, 조작성의 문제를 붉은 LED 화면(Low Resolution Works, 2001)으로 꼬집었다. LED 화면 속에서 걸어가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일 것으로 예상하기 십상이지만, 어느 순간 절룩거리는 걸음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움직임을 담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미디어가 진실을 말할 거라는 생각을 버리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정현목(36) 작가의 ‘속물 정물화(Still of Snob)’는 보다 직설적으로 허영을 비꼰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비싼 새우, 고가 그릇 등을 정물로 그렸는데, 그런 바니타스 정물화에 작가는 짝퉁 명품을 슬쩍 집어넣었다. 하이브(45)의 ‘나뭇잎(Leaf)’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다. 터치스크린에 글씨를 쓰면 영수증 크기 종이에 인쇄돼 나뭇잎처럼 떨어지는 설치물이다. 이번에는 관람객들이 터치스크린에 꿈과 애착의 대상을 적도록 했다. 내 소망이 즉석에서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는 걸 보며 욕망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입장료 성인 9000원, 대학생 7000원. 8월 9일까지(02-395-0100).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잠시, 삶과 죽음을 응시해보자… 서울미술관 ‘모든 것이 헛되다’
입력 2015-06-08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