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공포가 온 국민의 일상을 마비시키고 있다. 어떤 초등학생은 수영 강습을 한 달 쉬기로 했고, 어떤 군인은 외박을 금지 당했다. 한 부모는 아이의 중요한 수술 날짜를 뒤로 미뤘다. 초등학생 엄마들의 SNS 대화방은 학교 휴업에 관한 이야기로 넘친다. 메르스가 흑사병이라도 되듯 불안은 다른 불안을 낳고 이는 거대한 공포가 돼 삶을 짓누르고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이 아무리 ‘위험이 낮다’ 해도 국민은 계속 불안해한다.
공포가 쉽게 가시지 않는 이유는 정부 각 부처가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태를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메르스는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이 낮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제는 정부 다른 부처들이 복지부 얘기를 믿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육부가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일선 학교의 휴업 조치를 지켜만 보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예방적 차원에서 적극 검토한다”며 휴업을 독려하듯 발언했다. 정확한 메르스 정보를 학교에 전달하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잇따른 학교 휴업은 메르스 공포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방부도 복지부를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군은 지난달 말 메르스 환자 접촉 의심 병사가 있다며 관련 병사 30여명을 격리했다. 복지부가 그 병사는 역학조사상 감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지만 군은 듣지 않았다. 복지부는 결국 유전자 검사로 이를 증명해야 했다. 부처 간 불신 속에 예산과 시간이 낭비됐다.
경찰청은 메르스 예방 차원에서 음주단속을 선별적으로 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 하나하나가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하지만 복지부와 공식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복지부 국장)은 4일 브리핑에서 “그 부분은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질병관리본부에 전화로 문의해 타액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메르스 확진 판단도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다. 국방부가 지난 3일 공군 간부의 1차 양성 판정을 언론에 밝힐 때 복지부는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확인을 피했다. 추가 확진자 한 명 한 명에 민감한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복지부가 다른 정부기관의 신뢰도 받지 못하는, 정부가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된 상황은 초기 대응 실패로 불신을 자초한 결과다. 정부 내 소통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국민에게 전하는 정부의 메시지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컨트롤타워가 너무 늦게 만들어졌다. 지금이라도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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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5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