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또 ‘먹튀’ 노리나

입력 2015-06-05 02:54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보유해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 회사는 경영 참여를 선언하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2004년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가 삼성물산 지분 5%를 사들인 뒤 경영에 간섭하다 시세차익만 챙기고 떠났던 ‘먹튀’ 사례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물산 지분 4.95%(773만2779주)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지난 3일 2.17%(339만3148주)를 추가 확보해 국민연금(9.79%)과 삼성SDI(7.39%)에 이어 3대 주주가 됐다. 엘리엇은 4일 지분 보유 목적이 ‘경영 참가’라고 공시했다. 따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선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며 합병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엘리엇은 미국 헤지펀드 거물 폴 싱어가 1977년 세운 회사로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 두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전체 운용 자산은 260억 달러(약 29조원)에 이른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이 19%대로 다소 취약한 편이며, 외국인 지분이 32.11%에 달한다. 엘리엇을 비롯한 외국인과 기관 주주들이 1조5000억원 규모(보통주 지분 약 17% 해당)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높아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로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보다는 보유 주식을 팔아 수익을 내면 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엘리엇이 실제로 합병을 무산시키려는 게 아니라 경영 간섭으로 기업을 흔들어 반대급부를 얻어내든지, 경영권 관련 잡음을 일으켜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엘리엇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두 기업의 합병 계획 추진이 더뎌질 수 있다. 이날 삼성물산 주가는 10.32% 급등했다. 이에 따라 엘리엇의 추가 매수분(339만3148주)의 지분 가치만 하루 만에 약 201억원 증가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