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심을 등에 업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괴담’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와 음모론이 난무하면서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와 닮은꼴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전파되는 이 괴담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의사한테 받았어요’…각종 민간요법=‘성인보다 아이들이 걱정입니다. vitC. NAC. vitD. 초유. 프로바이오틱스, zinc, vitB complex 더 많이 먹게 하도록 하세요. 팬데믹 기간동안 꾸준히 그리고 많이 먹이셔야 합니다.’ 메신저를 통해 번지는 비타민 민간요법이다. 그럴싸하게 포장됐다. 일부에선 ‘치명적 바이러스 질환이 퍼질 때 매끼 비타민C 2알을 함께 복용하면 잠복기에 바이러스를 퇴치하거나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구체적 복용법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는 4일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고 면역증강 측면에선 홍삼 먹는 것과 같다. 정맥주사 등도 예방에 전혀 효과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코에 바세린을 바르면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다’는 글도 돈다. 유니레버바세린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메르스 바세린 예방법은 의학적 근거가 없으며 해당 내용은 바세린의 입장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병원 내부 정보라면서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우리 병원 긴급대책위가 발족됐다. 1급 에피데믹 수준의 감염대책이 필요하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1급 에피데믹(유행병) 수준의 감염대책은 환자가 대량 발생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막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라며 “현재는 병원이 그 정도 대비를 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루머”라고 설명했다.
국내 유행하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종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감염내과 교수들이 늘고 있다는 소문은 불안심리를 자극한다. 고려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일부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변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로선 감염력이 빨라지는 전파 변이라기보다 병원이 감염 관리에 실패한 탓에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병원’을 넘어 동네로…음모론까지=특정 병원과 동네에서 환자가 나왔다는 소문은 각급 학교의 휴업과 맞물려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기 분당제생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확진 판정을 받아 방제복 차림의 대원들이 서울 대치동 자택을 방문해 이송했다’는 글이 이런 경우다. 분당제생병원은 “직원은 물론 환자 중에 ‘의심환자’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글에는 해당 의사의 아들이 재학 중인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와 휴업에 돌입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학교는 정상 수업 중이고 의심환자가 나온 적 없다”고 답했다.
또 대전의 한 대형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집 주소까지 나돌았지만 이 병원에 그런 이름의 의사는 없었다. 병원 측은 “호흡기내과 교수 한 명을 포함해 40여명 병원 직원이 자택격리 중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대학병원 2층에 환자가 3명 있고 레지던트 중 감염자가 있다’는 글도 유언비어다. 이 병원 측은 “2층은 일반병동이라 환자가 없고, 1층 음압병실에 다른 병원에서 온 확진환자 2명이 있다”며 “의료진을 포함해 전체 직원 중 격리 대상은 없다”고 설명했다.
괴담은 ‘음모론’으로 성장하고 있다. 메르스 확산이 주한미군의 ‘탄저균’ 탓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 지난달 29일 ‘한국 메르스는 미군의 실험일 수 있다’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조회수 11만건을 기록한 이 글엔 “한국 메르스는 미국 네오콘의 지시에 의한 미군의 실험 또는 백신 장사용 사전포석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글 작성자를 불러 작성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악성 루머로 피해를 본 병원·학원 등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유명 수학학원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학생이 이 학원에 다닌다는 루머를 퍼뜨린 네티즌 3명을 처벌해 달라며 지난 3일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전수민 신훈 고승혁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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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5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