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산 비상] 격리자 버젖이 내외부 활동… 일일이 통제 못해 실효성 의문

입력 2015-06-05 03:00
아시아나항공 방역팀 직원들이 4일 인천공항 격납고에서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항공기 내부 소독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공항=김지훈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보름 만에 36명으로 늘면서 ‘팬데믹(대유행)’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보건 당국과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감염 사례가 모두 병원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일어난 ‘의료 관련 감염’이며, 그것으로 지역사회 확산이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본다. 하지만 새로운 환자와 감염 의심자들이 계속 늘면서 메르스가 ‘병원 담장’을 넘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병원 감염 철저히 막으면 메르스 종식 가능”=세계보건기구(WHO)는 4일 “메르스 확산을 방지하려면 우선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한 적절한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도 “병원은 면역력이 낮은 사람이 모인다는 특성상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 장소”라며 “병원 내 감염만 철저히 막으면 메르스 종식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원에서는 기관지 내시경, 신장 투석, 객담 검사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외부로 노출될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의료진의 가운이나 청진기, 이동형 의료 설비 등을 통해서도 바이러스가 옮겨갈 수 있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병원에서는 한 달 반에 걸쳐 23명에게 메르스 2·3·4차 전염이 일어났었다. 문제는 병원 내 감염이 빈번한 데도 정부 대응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의심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옮겨 다니며 바이러스를 전파시켰다.

의료진 환자도 5명으로 늘어 병원에서 의사·간호사를 통한 환자의 추가 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보건 당국은 감염 의심 의료진의 철저한 격리를 강조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선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첫 사망자가 입원했던 경기도 모 병원 중환자실의 경우 의료진 상당수가 격리 조치 없이 정상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병원 밖 이동도 허용되고 있다. 더욱 철저한 감시와 통제가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택 격리 시스템 재정비 시급=자택 격리자가 지켜야 한다며 질병관리본부가 내놓은 지침에는 지키기 어려운 것이 많다.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기, 가족 또는 동거인과 대화 등 접촉하지 않기, 전용 물품(개인용 수건, 식기류, 휴대전화 등) 사용하기 등이 준수사항으로 통보된다. 또 격리자는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혼자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는 공간에서 생활하라고 강조한다. 불가피하게 가족과 대화해야 한다면 얼굴을 맞대지 않고 서로 마스크를 쓰고 2m 이상의 거리를 둬야 한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사는 자택 격리자의 경우 집에서 이런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기는 어렵다. 화장실이 하나라면 세면대와 양변기를 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고, 식기와 수저도 함께 쓰는 일이 다반사다. 보건 당국은 “락스나 가정용 소독제를 사용한 뒤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까다로운 위생 절차가 얼마나 꼼꼼히 지켜질지 의문이다.

이런 주의사항은 강제성이 없다는 것도 허점이다. 자택 격리자가 그곳을 벗어나도 막을 길이 없고, 가족들이 환자와 접촉한 뒤 집을 나서더라도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종합병원 의사는 “만약 격리자가 메르스 감염자로 밝혀지고 가족 중 일부가 격리자와 접촉한 뒤 외부 활동을 했다면 3차 감염을 넘어 지역사회 전파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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