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한국말은 ‘빨리빨리’였습니다. 당시 중공군이 접근해 포탄이 쏟아지고 눈보라까지 몰아쳤죠. 공포에 질린 피란민들은 사생결단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해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을 구한 미국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 로버트 루니(83·변호사)씨의 눈시울이 이 대목에서 붉어졌다.
3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연방의회 오리엔테이션 영화관에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노병들과 미국 의회, 한인단체, 주미 대사관 관계자들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국제시장’의 특별상영회가 열렸다.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민주·뉴욕) 하원의원과 대표적 친한파 의원인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하원 외교위원장이 주최한 이번 상영회는 현 시점에서 그 의미와 상징성이 컸다. 미국 의사당에서 한국 영화가 상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영회는 당시 아비규환과 같았던 흥남철수작전을 기억하는 노병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안겨줬다.
특히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항해사로서 피란민 구출을 도왔던 루니씨는 영화 초반 긴박하게 돌아가는 흥남철수 장면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판 쉰들러’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마을을 버리고 부두로 달려왔다”며 “그들이 자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바다였고 그 마지막 배가 바로 우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부두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그리고 최대한 빨리 태웠다”며 “아기를 등에 업고 있고 양손으로는 다른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었던 여인들과 두 명의 아이를 큰 코트 안에 숨겨두고 있었던 노인이 생각난다”고 회고했다.
그는 “배에 올라탄 피란민들에게는 음식도, 물도, 전기도 없었지만 자유를 향한 풍족한 마음이 있었다”며 “거제도로 내려오는 동안 다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말했다.
루니씨가 당시 레너드 라루 선장에게 ‘중공군이 불과 3000∼4000야드 앞에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흥남부두로 들어가려는 결정을 내렸느냐’고 묻자 라루 선장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5장의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구절로 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이번 의회 상영회를 처음 제안했던 국제교류재단(KF)과 우드로윌슨센터는 미국 전역을 돌며 주요 지역에서 상영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윤제균 감독은 “미국 의회라는 뜻 깊은 장소에서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돼 큰 영광”이라며 “이 영화가 미국이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글·사진 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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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의회 영화관서 영화 ‘국제시장’ 특별상영회… “자유 찾으려는 피난민들 최대한 빨리 태웠어요”
입력 2015-06-05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