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자네들, 잡히는데 참 오래 걸렸어”… 英 탐사기자 제닝스 부각

입력 2015-06-05 02:44

2009년 영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앤드루 제닝스(71·사진)는 런던의 한 비밀 건물로 안내됐다. 그가 도착하자 3∼4명의 신사들은 자신들을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식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명함을 받아보니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었다. 이후 제닝스는 10년 이상 모아온 자료와 증거들을 FBI에 전달했다. 그들과의 만남 이후 6년이 흐른 지난달 27일 FBI와 스위스 검찰은 국제축구연맹(FIFA) 고위직 7명을 체포했고, 그 1주일 뒤에는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이 사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3일(현지시간) FIFA 비리 스캔들이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5년간 집요하게 그들의 비리를 파헤쳐온 제닝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제닝스는 취재 초창기부터 블라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2002년 블라터가 재선에 성공한 뒤 스위스 취리히에서 첫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제닝스는 “블라터 당신은 뇌물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이후 제닝스는 FIFA 회견장에는 출입이 금지됐다. 하지만 제닝스는 끈질기게 비리를 취재했고 2006년 ‘파울, FIFA의 비밀 세계, 뇌물, 투표조작, 티켓 비리’라는 책을 펴냈다. 책이 나오자 블라터는 고소하겠다고 협박했고, 최근 기소된 잭 워너 전 부회장은 그를 때리고 침을 뱉기까지 했다. 제닝스는 굴복하지 않았고 FIFA 비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거나 또 다른 책 ‘범죄은폐: 블라터의 FIFA는 조직범죄 집단’ 등을 내며 최근까지도 그들과 맞섰다.

제닝스는 1980년대 경찰 부패와 이탈리아 마피아 등의 조직범죄를 파헤치며 탐사보도 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선데이타임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국 BBC방송에서 런던 경찰국의 비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주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그는 이후 스포츠계 비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관련 뇌물 스캔들을 보도했다.

제닝스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법정 기자석에 앉아 FIFA의 인간쓰레기들을 향해 ‘이봐, 잡히는데 참 오래도 걸렸어, 안 그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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