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업계에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돌파구로 인수·합병(M&A)이 확산되고 있다. 셰일가스와 석탄화학 등 새로운 에너지원의 등장으로 불투명한 미래에 위협을 느낀 관련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정체기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호황기에 더 큰 이익을 보려는 노림수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달 삼성그룹의 석유화학 회사를 2곳 인수해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로 출범시키며 국내 석유화학 1위 업체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한화 측은 4일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와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기존 한화토탈이 영위하던 파라자일렌(PX) 및 한화종합화학이 영위하던 고순도프탈레이트산(PTA) 시황이 개선되며 예상보다 빨리 인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 1, 2위 석유기업인 시노펙(SINOPEC)과 페트로차이나(CNPC)의 합병설도 연초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설에 업계는 바짝 긴장하며 주목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엑슨모빌을 제치고 세계에서 시가총액 1위의 석유기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과거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구도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대형 메이저 기업의 M&A로 시장 판도가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계 글로벌 화학기업인 바스프(BASF)는 매출이 2001년 330억 유로(약 47조원)에서 2010년 640억 유로(약 92조원)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중 M&A에 의한 매출성장은 110억 유로(약 16조원)에 이른다. 글로벌 매출 순위 5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화학 기업 사빅(SABIC)은 M&A에 의한 매출 성장이 50% 이상이다. 엑슨모빌도 1998년 엑슨이 모빌을 인수해 지금의 엑슨모빌이 탄생했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파트너의 강점을 활용하기 위한 기업 간 합작기업 설립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화케미칼은 최근 사우디의 석유화학회사 시프켐(Sipchem)과 합작해 설립한 IPC에서 폴리에틸렌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중동산 에탄가스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나프타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원료 획득이 가능해져 획기적인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SK종합화학은 일본 JX에너지와 합작해 1조원 규모의 PX공장을 울산에 건설하고 작년 하반기부터 상업생산 중이다. SK종합화학은 JX에너지가 다양한 판매 네트워크나 막강한 자금력, 원료 공급력 등을 갖춰 최적의 파트너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이탈리아 석유화학 업체 베르살리스와 67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에서 연간 5만t 규모의 합성고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롯데케미칼은 기술력을 도입하고, 베르살리스는 안정적인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석유화학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 간 대규모 M&A나 합자회사 설립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석유화학업계 “뭉쳐야 산다”… 장기불황·불투명한 미래에 M&A·합작사 설립 바람
입력 2015-06-05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