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의사당, 정부서울청사, 국방부청사 근처를 지나다보면 상복 차림으로 노숙 시위하는 여성들을 발견하게 된다. 파월장병 미망인들이다. 이들이 내건 현수막에는 ‘미국이 제공한 장병 전투수당을 우리 정부가 착복했다’는 취지의 글귀가 쓰여 있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짐은 당연지사.
40여년 전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등교 때마다 줄지어 들판을 행진하며 ‘월남 군가’를 불렀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 아래 메아리치는, 귀신 잡는 그 기백 총칼에 담고….’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군가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담임선생님이 매일같이 전하는 월남 승전보에 환호했으나 선생님의 육사 출신 아들이 전사했다는 비보에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강청으로 1965년부터 73년까지 무려 32만명(연인원)을 월남에 파병했다.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5000여명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목숨을 잃었고, 수만명은 고엽제 피해를 입었다. 월남 파병의 대외적 명분은 자유수호였지만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군 계속 주둔과 경제원조 확대를 얻어내려는 전략이 깔려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파병기간 동안 미국으로부터 거액의 추가 원조를 받았다. 이것이 경제부흥의 밑거름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전투수당 착복이라니. 미망인들은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투수당 명목으로 건네받은 41억6000만 달러 중 39억7800만 달러를 국고에 귀속시켜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국방부는 당시 봉급의 서너 배에 해당하는 해외파병수당을 지급했다고 반박한다. 정부의 추가지급 불가 방침은 확고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줬으면 좋겠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기꺼이 전장에 나간 자랑스러운 대한용사 아내들 아닌가.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파월 전투수당 챙겨주세요”
입력 2015-06-05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