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재중] 보건소를 적극 활용하자

입력 2015-06-05 00:20

온 나라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다. 카톡에는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 이름과 근거 없는 괴담이 나돌고, 밴드에는 ‘메르스 사태 향후 예상 시나리오’까지 올라 있다.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퍼트린 피의자가 3일 처음으로 경찰에 검거됐다. 피의자는 ‘메르스 발생 병원. 현재 격리조치 중. 널리 전파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4곳의 병원 이름이 적힌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전파한 혐의를 받고 있다. 거론된 병원들은 메르스 확진자 발생과는 전혀 관련 없었지만 문의가 폭주했고, 외래환자가 급격히 줄어 큰 피해를 보았다.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과 공유하지 않은 탓에 보건 당국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고 시중에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떠돌아 막연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보건 당국의 안이한 대응으로 3차 감염자까지 발생했고 메르스 격리 대상자는 1600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급기야 메르스 격리 대상자를 통제할 수 없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메르스 전용 병원’ 지정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공립병원 건물 하나를 모두 비워 메르스 환자만 돌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가 격리는 강제성이 없어 통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에서 자택격리 중이던 A씨(51)가 남편과 함께 집을 나와 일행 15명과 전북 고창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긴 것은 정부의 허술한 방역 대책의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메르스 전용 병원만으로는 메르스 의심 환자를 모두 수용할 수 없다. 일부 병·의원은 메르스 의심 환자 받기를 꺼리고 있다. 민간 의료시설은 정부 방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전국 시·군·구에 있는 보건소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보건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공공 부문의 지역보건 활동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돼 있다. 보건소의 첫 번째 업무는 진료가 아닌 전염병 및 질병 예방과 관리다.

보건소에는 전문의 자격을 가진 공중보건의가 있어 발열이나 기침 등 메르스 초기 증상이 있을 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감염자와 접촉했으나 증상이 없는 메르스 자가 격리자나 의심 환자를 일단 보건소에 격리 수용했다가 양성 판정이 나오면 메르스 전용 병원으로 옮겨 치료해도 늦지 않다.

보건소는 정부와 지자체의 직접 통제를 받기 때문에 민간 병·의원보다 방역 대책을 수행하고 메르스 의심 환자를 격리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보건 당국도 메르스 초기 증상을 보이는 의심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보건소나 메르스 핫라인(043-719-7777)으로 연락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보건소에 메르스 진단 키트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보건 당국은 전국 보건소의 메르스 검사 키트 보유 현황을 즉시 파악해 부족하다면 신속히 공급해야 한다.

민간 병·의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메르스 의심 환자 진료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면허를 받은 의료기관이라면 정부의 방역 대책에 협조해야 한다. 다만 메르스 의심 환자가 거쳐간 병원이라는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해 병·의원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에서 꺼리는 업무를 보건소가 선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보건소가 질병 예방과 전염병 방역의 최일선 공공 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분명하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민간 병원과의 역할 분담이나 민관 협력도 원활해질 것이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