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가기

입력 2015-06-05 00:20

거의 날마다 동네에 있는 천변을 산책한다. 요즘처럼 기온이 오르고 날이 가물면 산책이 별로 유쾌한 일이 되지 못한다. 개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고, 초파리가 떼를 지어 달려들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산책을 하다가 한동안 넋 놓고 개울물을 바라보았다. 푸른 녹조류들이 흐느적거리는 검은 물을 보니 어느 책에서 읽은 ‘내 집 앞을 흘러가는 물이 머지않아 내 몸 속을 흐르는 물이 될 것’이라는 경고 비슷한 글귀가 떠올랐다.

예전에 시골에 살 때는 수돗물이 아니라 지하수를 먹었기 때문에 내가 설거지한 물, 세탁기 돌린 물이 곧바로 내 몸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밀가루로 설거지하고 빨랫감에 비누칠을 해서 세탁기를 돌리는 유난스러운 짓을 했다. 하지만 도시로 이사를 온 뒤에는 생활 방식이 점점 바뀌었다. 편리하면서 시간과 돈이 절약되는 방향으로. 내가 텃밭에서 직접 농사지을 때는 농약도 제초제도 화학비료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요즘 시장에 가서 유기농 채소를 사는 일은 거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사람 힘으로만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대한 불만은 없다.

물이나 공기의 오염도 돈만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일인 것 같다. 깊은 산속에서 퍼온 생수를 사먹을 수도 있고, 아쉬운 대로 정수기를 설치할 수도 있으며, 방 안 공기를 맑게 해준다는 공기청정기도 있으니까.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사능 오염조차 자본과 기술로 극복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해결책은 매우 비싼 값으로 팔릴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땅이나 물, 공기를 오염시킨 진짜 원인은 화학물질이나 방사능이 아니다. 생명보다는 편리함이나 최대 이윤 실현이 더 중요했던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 또한 인간이니 오염된 세상을 받아들이며 그저 능력껏 살아갈 수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