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말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두 번째 타석에 섰다. 내·외야석에 앉아 있던 팬들이 일어섰다.
롯데 자이언츠 선발투수 구승민의 손을 떠난 공이 이승엽의 방망이에 정확하게 걸린 뒤 외야로 쭉 뻗어나갔다. 이승엽도, 관중들도 모두 숨을 죽인 채 공의 궤적을 따라갔다. 공은 그대로 우측 담장으로 넘어갔다. 순간 경북 포항구장은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고 축포 400발이 터졌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었다. 이승엽은 3일 포항구장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400홈런을 뽑아냈다.
모든 상황이 이승엽의 400홈런을 만들도록 흘러갔다. 좌타자인 이승엽을 위해 바람도 우측 외야 쪽으로 불었다.
첫 번째 공을 거른 이승엽은 시속 140㎞짜리 직구를 잡아당겼고 공은 우측 외야석 뒤로 넘어갔다. 타구가 향한 오른쪽 잔디 외야석은 타구를 쫓는 관중의 쏠림으로 물결이 형성됐다. 공은 구장 밖으로 나갔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아내 이송정씨와 자녀, 아버지 이춘광씨도 관중석에서 영광의 순간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눈물을 훔쳤다. 전광판에는 신기록 수립을 축하하는 ‘40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혔다.
3회말이 종료된 직후 꽃다발 증정식이 열렸다. 김인 사장과 류중일 감독, 주장 박석민과 원정팀 주장 최준석이 축하 꽃다발을 건넸다. 관중석은 ‘이승엽’을 연호했고 이승엽은 모자를 벗어 환호에 답했다.
홈런공을 잡은 주인공은 충남 천안에서 경기장을 찾은 직장인 김재명(43)씨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경기 전 이승엽이 타석 때 사용할 공에 특별한 표시를 했다. 김씨가 주운 홈런공에는 인쇄된 ‘KBO’의 ‘O’에 검정색 싸인펜으로 찍은 점이 있었다. 김씨는 “야구팬으로서 야구의 기록인 이 공을 기증하고 싶다”며 “아내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통산 400호 홈런공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격을 매기면 최소 1억원, 최대 10억원 가량 될 것으로 파악된다. 류 감독은 “식당에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을 만났는데 이승엽의 400홈런의 값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10억원이라고 답해줬다”면서 “이승엽이 은퇴하면 그 공의 가치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한국프로야구 홈런공 최고가는 1억2000만원이다. 이 또한 이승엽이 2003년 6월 22일 대구 SK 와이번스전에서 기록한 아시아 최연소 300호 홈런공이다. 이 공은 구관영 에이스테크놀로지 회장이 구입해 삼성에 기증했다.
포항=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이승엽 400 홈런] 빈 마음 ‘무욕의 스윙’… 함성은 역사가 됐다
입력 2015-06-04 04:25 수정 2015-06-04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