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11시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 흰색 전신보호복(방역복)을 입은 보건 당국 방역대원들이 출동했다. 주민 A씨가 열이 나자 메르스에 감염된 것 같다며 신고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A씨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후 엘리베이터나 복도 등엔 별다른 소독·방역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오피스텔에 입주한 400여 가구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한동안 불안에 떨었다. 다행히 A씨는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명돼 2일 오전 3시쯤 귀가했다.
이웃 B씨(50)는 “지하철이나 백화점처럼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지만 내 집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바이러스가 퍼져 있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며 “환자가 아니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현재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났을 경우 거주공간에 대해서는 방역 처리를 하지만 외부 방역은 권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3일 격리 대상자가 1364명으로 늘어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메르스 감염 위협은 더욱 커졌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 속에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메르스 공포증’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는 눈에 띄게 썰렁했다. 직원들은 “어제부터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판매원 류모(여)씨는 “특히 시식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본사에서도 판매원에게 마스크를 일괄 지급했고 일부 매장에선 아예 시식을 하지 말자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원에 보내지 않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전에 사는 주부 박모(29)씨는 “근처 문화센터 유아프로그램은 평소 20명 자리가 꽉 차서 대기했지만 어제는 2명만 나왔다”며 “병원에 가는 게 마음에 걸려 아기 예방접종도 미뤘다”고 말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이 모이는 돌잔치, 결혼식, 장례식, 예비군 훈련에 가는 게 꺼려진다는 시민들도 많다. 온라인에서는 여러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활동하는 헬스장이나 수영장, 영화관 등의 예약을 취소했다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택배나 음식 배달원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확진 환자 발생 지역에선 심각한 경제활동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의 K음식점 구모(29) 부장은 “이번 주말 돌잔치는 3건이 전부 취소됐다”며 “업계에선 당분간 이 분위기가 매출 타격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지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역의 K음식점 김모(56·여) 사장은 “사람 많은데 가면 안 된다는 이유로 취소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도 울상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김모(30·여)씨는 “손을 만지고 코앞에 얼굴을 맞대며 일하는 입장에선 꺼림칙한 게 사실”이라며 “손님도 확연히 줄었지만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했다.
최대 수만명이 모이는 공연과 각종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업체들은 메르스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이미 취소 움직임이 시작됐다. 남한산성아트홀은 오는 12일 시작 예정인 ‘모노드라마 페스티벌’을 9월로 연기했다. 더바이브엔터테인먼트도 7일 수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더 바이브 패밀리 콘서트’ 연기와 예매 환불을 결정했다. 공연계 관계자는 “한정된 공간에 다수의 관객이 모이는 공연 장르의 특성상 전염병에 취약하다”며 “이번 주 안으로 진정되지 않는다면 다음 주부터 공연 취소가 잇따를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미나 심희정 최예슬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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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4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