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발자국이 아니라 데이터를 남긴다. 데이터는 수집되고 거래되고 이용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대충 여기까지다. 개인정보 중 어떤 것이 누구에 의해 저장되는지, 그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누가 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로부터 어떤 결과가 생길 수 있는지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독일 녹색당 소속의 젊은 정치인 말테 슈피츠(31)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누가 어떻게 수집하고 관리하며, 그 정보로 무엇을 하는지 추적했다. 그의 추적은 이동통신사에서 시작된다. 독일 최대 통신사인 도이체텔레콤에 자신에 관해 저장된 정보를 요청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3년간의 법정공방을 거친 뒤에야 그는 통신사가 저장하고 있었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소송으로 독일에서 유명 인물이 된다.
“3만5830, 나는 이 숫자를 잊을 수 없다. 3만5830행으로 이루어진 표가 내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각 행에는 내가 했던 통화, 내가 보낸 문자메시지, 내가 이용한 웹사이트, 내가 받은 이메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내 삶의 6개월이 이 표 안에 고스란히 담겼으며, 하루에 약 200개씩 나에 관한 정보가 저장되었다.”
그는 이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정보의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을 제기한다. 그는 “다른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우리 자신이 모른다는 점, 게다가 우리한테 그 정보를 비밀로 한다는 점, 이것이 바로 이 새로운 세상의 특색”이라며 “우리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통제할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말테가 범죄전문기자와 공동 저술한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는 빅데이터 찬가가 울려 퍼지는 지금 시대를 향해 얼음물을 끼얹는 책이다. ‘감시사회’라는 익숙한 테마를 계승하고 있지만,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다. 휴대전화를 시작으로 신용카드, 주민등록정보, 여행예약, 의료기록 등으로부터 데이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되는지 현장 취재와 전문가 인터뷰, 보고서 등을 통해 탐색한다.
점점 더 많은 개인정보가 생성되고 저장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을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가 국가권력에게 넘겨진다는 점이다. “기업은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데이터뱅크를 무한정으로 계속 확대하려 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국가기관에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과 정보기관에 의한 개인정보 조회는 오래 전부터 일상이 되었다.
책에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제임스 센선브레너의 인터뷰가 나온다. 미 국가안보국의 대국민 감시활동을 사실상 가능케 한, 일명 ‘애국법’을 만든 인물이다. 그가 6월 1일 부로 효력이 끝나는 이 애국법의 국회 재승인 안을 거부하기로 한 것은 극적인 반전이다. “2013년 이후 차츰 드러난 대량감시의 실태를 옹호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데이터들이 주로 인터넷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부지불식간에 생성된다는 것, 그리고 국가기관이 기업의 데이터뱅크에 접근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디지털 시대에 축적되고 있는 개인정보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 “정보보호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권력 문제 중 하나”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나도 모른 정보수집… 그들은 날 알고 있다
입력 2015-06-05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