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메르스, 범국가적으로 대응하라

입력 2015-06-04 00:50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사망자가 나온 데다 확진 환자, 감염 의심자, 격리 대상자가 급속하게 늘면서 온 국민이 좌불안석이다. 보건 당국의 예상이 거듭 빗나가면서 환자와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부모들이 자녀 학교 보내기를 꺼리면서 이미 수백개 유치원과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음에도 휴교 필요성에 대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딴소리를 해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국 일본 홍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전염병 관리능력 부재를 질타한다. 정부 수립 후 경험해보지 못한 국제 망신이다. ‘병원 감염’이 아닌 ‘지역 감염’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발생할 경우 국가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작금의 위기를 신속하게 수습하지 못하면 국내 경기 위축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수지를 비롯한 국제무역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 중국에서 사스(SARS)가 발생했을 때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국내 환자 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환자가 발생했음에도 안이하게 판단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전적으로 맡기는 우를 범했다. 특히 보건복지부 등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메르스는 순식간에 번져버렸고, 박근혜 대통령은 3일에야 뒤늦게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나섰다. 내용도 ‘철저히 대처하라’는 원론적 지시가 전부였다. 늑장행정의 전형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허둥지둥하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국가비상사태에 임한다는 자세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대재앙만은 반드시 막아내야겠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메르스는 이미 전 부처가 힘을 모으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려운 대형 사태로 번졌다.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교육부 국방부 외교부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부처도 함께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국무총리가 컨트롤타워를 맡는 게 적절하겠지만 현재 공석이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국회에서 임명동의를 받는다 해도 이달 중순은 돼야 취임할 수 있다. 총리권한대행이나 사회부총리로는 영이 서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온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고, 국가 신인도와 국민경제가 걸린 문제라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필요하다면 매일이라도 비상 국무회의를 열어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병원과 의료진 등 민간으로부터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내고,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게 결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