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보건과 복지

입력 2015-06-04 00:06

우리는 며칠 전까지 ‘복지’를 주로 고민하는 국민이었다. 내가 받을 연금과 자식들의 부담을 견주며 해법을 찾고 있었다. 저출산 고령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국가 재정을 우려하고 사회안전망을 논했다. 꽤 의미 있는 이슈였다. 경위야 어떻든 미래를 이야기한 것 아닌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금, 우리는 ‘보건’을 걱정하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순식간에 나라를 뒤덮었다. 인구변화가 내 노후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다 갑자기 전염병 바이러스에 떨게 된 상황은 당황스럽다. 나는 지금 돼지의 심정을 알 것 같다.

4년 전 충북의 단양유기농원에 가서 ‘돼지는 행복해야 한다’는 기사를 썼다. 국내에 몇 안 되는 동물복지형 양돈농장이었다. 고기로 식탁에 오를 돼지들이 살을 찌우는 밀집사육장 대신 넓은 풀밭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런 농장들을 소개하는 ‘농장동물복지 우수사례집’을 펴냈다. 서두에 실린 장관의 글은 이랬다.

“배고프던 시절, 농업은 많이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품질 좋고 안전한 농산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동물복지는 생소하지만 중요한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세계 각국은 이미 동물복지형 축산물 기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농가의 생각과 경험에서 미래가치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사례집이 나오고 몇 달 뒤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국을 휩쓸었다. 소와 돼지를 350만 마리나 살처분했다. 곳곳에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나왔다. 경북 안동에서 처음 의심증상이 신고됐을 때 음성으로 오진해 1주일이나 손놓고 있었다. 그 원인은 구제역 정밀검사 장비가 전국에 단 한 곳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술한 공항 방역과 숱한 뒷북 조치가 도마에 올랐다.

선진적인 동물복지를 얘기하다 정작 기본적인 구제역 방역에 실패했던 농식품부와 국민의 노후를 얘기하다 정작 당장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전염병 방역에 실패한 보건복지부. 2011년의 돼지와 2015년 나의 상황은 정부가 초동 대응을 잘못해 일이 커졌다는 미시적인 부분들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동물복지 사례집의 농식품부 장관 글을 보면서 ‘이건 콜레라를 막지 못한 복지부 장관이 무상보육을 얘기하는 꼴이지 않나’ 했는데, 지금 상황이 그렇게 됐다.

보건복지부의 옛 이름은 보건사회부다. 그 전에는 그냥 보건부였다. 약어로 따지면 보건부→보사부→복지부로 바뀌어 왔다. 부처의 명칭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보건부를 복지부로 부르게 된 것은 이제 보건위생 정도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는 뜻일 텐데, 복지부는 지금 국민들에게 손을 잘 씻으라고 말하고 있다. 무상급식을 하다가 재정이 부족해 삐걱거리는 것은 그럴 수 있다. 기초연금을 20만원 주려다 15만원밖에 못 주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아직 과도기니까 곧 나아지겠지 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기약할 내일이 없지 않나.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같은 상황을 우리 국민은 한 정권에서 두 번째 겪고 있다. 세월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시작하자며 1주기를 보낸 지 이제 겨우 한 달 반이 됐다. 또 터져 나온 안전 문제의 양상은 세월호 때 정부가 보여준 모습과 달라지지 않았다. 선진화를 기대했는데 자꾸 후진적인 정부를 보게 된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제라도 잘해야 한다는 참견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지고, 실망도 그렇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