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메르스와 전염병의 위해성

입력 2015-06-04 00:10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공포가 현실화하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어김없이 괴담도 난무하고 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정부가 초기격리 등 초동대응에 실패한 데다 ‘전염성이 낮다’거나 ‘3차 감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등 헷갈리게 하는 정보를 유포했다.

과학자들은 일상에 잠재한 위험들에 대해 위해성(僞害性) 평가를 통해 경중을 가늠한다. 통상 화학물질, 식품, 기계·기술 등에 적용되는 개념이지만 전염병에 대해서도 응용할 수 있다. 유해성(有害性)은 어떤 사물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위험요인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나 잠재력이다. 반면 위해성은 어떤 물질이 실제로 해를 끼칠 확률을 말한다. 위해성은 유해성에 노출 확률(빈도)을 곱한 수치로 나타낸다. 전염병은 치사율 곱하기 전염속도(전파력)로 표시될 것이다.

2003년 유행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은 치사율이 10%로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홍콩 등에서 전파력이 커서 감염자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방역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면서 확진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2009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종플루는 치사율이 0.07%로 계절 독감(0.1%)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파력이 커서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3월 기준 260명이 신종플루로 사망했다. 당시 신종플루는 “호랑이가 아니라 들쥐 떼”라는 비유가 나왔다. 메르스는 사스와 비슷하지만, 치사율이 40%로 훨씬 더 높다. 반면 전파력은 신종플루에 비해 크게 약하고, 사스에 비해서도 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메르스가 알려진 지 3년밖에 안 됐다. 치료법이 개발되고 치사율이 낮아질 때까지 전염속도를 늦추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초기 대응의 잘못과 신종 전염병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관련 정보와 정부대책을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국민들이 느끼는 주관적 위해성이라도 낮춰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