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일수] 볼썽사나운 입법권 갈등

입력 2015-06-04 00:30

국회법 제98조 2항 개정으로 국회와 청와대, 여당과 정부, 야당과 정부, 여당과 야당, 여당 내부의 갈등 등 복합적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종전 이 국회법 조항은 상임위원회는 대통령령 등이 법률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면 소속 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고, 그 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결과를 지체 없이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는 통보 대신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기관의 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내용을 손질했고, 국회 본회의는 무려 211명의 찬성으로 이 개정안을 의결했다.

논쟁의 핵심은 수정·변경하도록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토록 한 것이 강제성을 갖느냐에 있다. 여당은 국회가 행정부에 의무를 부과했으나 강제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야야 합의 개정의 취지는 강제성을 띤다는 입장이다. 야당의 견해대로라면 위헌 소지가 불거지고, 여당 견해대로라면 이런 개정을 왜 했는지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단호히 수용불가 원칙을 천명했다. 강제성이 있는 위헌 조항일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이 조항을 발판삼아 국회의 행정부 흔들기가 도를 넘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제 개정 국회법이 현실로 위세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행정입법도 자구 하나 문제 삼아 빈번히 국회에 끌려다니게 될 터이다. 극단의 경우 국정 마비와 정부 무력화의 길로 들어설 전망이다. 심지어 시행령 등 행정부 재량 아래 있는 정책의 수립·집행이 지역 이익이나 특정 집단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손쉬운 흥정거리로 전락할 위험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지금 논란이 한창인 개정 국회법이 강제성을 띤 규정이라고 한다면 모법으로부터 일정 범위 재량권을 쥔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입법권의 과도한 간섭이 아닐 수 없다. 또 그 시행령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할 사법부의 권한까지 국회가 좌지우지하는 꼴이 된다. 이것은 건전한 법감정을 가진 보통사람들의 상식에 비추어봐도 권력분립의 정신을 해치는 일이다. 일부 헌법학자 중에는 행정입법도 본시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 아니라 국회로부터 위임된 것이라는 이유로 이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 간 견제·균형의 필요성이 없는 사항에 대해 견제를 시도하는 것은 권력분점에서 오는 균형성과 독자성을 파괴하는 위험한 일이다. 법적 효력을 갖고 있지만 대법원의 각종 규칙 제정권과 행정부의 각종 시행령 제정권, 지자체의 조례 제정권 등은 나름 균형과 독자성을 중시한 헌법질서의 일부인 것이다.

이번 파동은 세월호법 시행령을 정치 쟁점화하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끌고 가려는 일부 정치세력의 장단에 놀아난 정치성 짙은 입법의 전형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당의 연계 전략과 맞물려 괴물이 된 것이다. 모든 연계 전략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보편성 추구에서 부득이 소외되는 소수자들을 살리기 위해서든지, 사물의 본성상 연계돼야 마땅한 사안이라는 형평성과 실체적 정의감에 이끌림이 분명해야 한다.

일이 여기까지 번지고 보니 이젠 정도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위헌 소지를 없애는 방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최종적으로 헌재에 권한심판청구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일각에서 거론하듯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당이 의사를 결집해 해당 규정을 사장시키는 정치적 결단으로 나가는 길이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