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테러 聖地’ 건설 논란

입력 2015-06-03 03:41
오사마 빈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아지즈대학 재학 때부터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인 ‘와하비즘(Wahhabism)’에 심취해 있었다. 빈라덴과 그가 이끈 알카에다는 와하비즘에 근거해 서방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수행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전쟁 중인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도 자신들의 성전의 배경에 와하비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와하비즘은 사우디 출신 신학자인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1703∼1745)이 창시한 이슬람 원리주의다. 코란에 쓰인 대로 따르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이교도이며 이들은 정복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와하비즘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아프리카의 보코하람 등 전 세계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사우디 왕족이 압둘 와합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와하비즘이 태동한 곳인 수도 리야드 인근 디리야에 그를 기리는 복합건물을 짓고 ‘압둘와합재단’을 입주시키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재단이 들어서면 테러리즘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사는 2년 뒤에 끝나며 모두 5억 달러(약 5500억원)가 소요된다.

사우디 왕족이 와하비즘을 기리려는 이유는 사우디 왕국 건설에 와하비즘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가의 조상인 이븐 사우드는 와합과 함께 18세기 초 와하비즘을 실천하는 새 국가를 건설했는데 그게 오늘의 사우디다. 왕족으로선 와하비즘을 기리는 건물을 세워 현재의 왕족이 오늘날의 사우디를 건설한 주체임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이를 통해 왕족 통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테러리즘 확산 우려에 대해선 “와하비즘은 관용도 중요시하며 역사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건설이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NY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와하비즘은 그동안 같은 이슬람교도인 시아파도 많이 죽여 왔을 정도로 편협하며, 사우디는 수니파 이외의 종파 유적지는 대부분 파괴해 왔다”고 전했다.

한편 사우디는 이날 25년 만에 이라크 주재 상주 대사를 임명했다. 사우디는 1990년에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국교를 단절하면서 주바그다드 대사관도 철수했다. 이후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이듬해인 2004년 국교를 재개했으나 시아파가 집권한 이라크에 외교 공관을 설치하지 않았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