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저고리에도 흙물이… 황순원 ‘소나기’ 후배 문인들이 오마주한 속편 출간

입력 2015-06-03 02:13

“얼룩이 든 저고리는 흠뻑 젖은 채 이윽고 물살을 따라 유유히 떠내려갔다.”

소설가 황순원(1915∼2000·사진)의 단편 ‘소나기’에서 소녀는 죽고 소년은 남았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후배 문인들이 ‘소나기’ 속편을 썼다.

2일 출간된 대산문화 여름호는 황순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소나기 이어쓰기’라는 제목으로 전상국(75) 박덕규(57) 서하진(55) 이혜경(55) 구병모(39) 등 문인 5명의 작품을 실었다. 구병모는 며칠 후를 상정했다. 윤 초시네 손녀딸이 떠나고 소년은 까닭 없이 며칠을 앓다가 일어났다. 그제야 터지고 해진 자신의 저고리에도 흙물이 묻은 걸 발견한다. 소녀를 등에 업었을 때 입었던 옷이다. 소녀의 분홍 스웨터에 묻은 흙물처럼 소년의 저고리에도 같은 물이 밴 것이다. 소년이 개울가에서 저고리를 흘려보냄으로써 비로소 소녀를 보낼 수 있었다.

이혜경의 글에선 소년이 중학교를 마치고 도시 공장에 취직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느새 점심을 먹고 나면 담배 생각이 나는 스물한 살 청년이다. 어느 날 동료가 잡지 한 권을 들고 왔는데, 잡지 속의 여학생 사진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단발머리에 하얀 얼굴 (중략) 살아 있다면 지금 꼭 이럴 것이다.”

전상국은 소녀와 자꾸 중첩돼 떠오르는 담임선생님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소년의 변화를 통해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을 그려냈다. 박덕규는 판타지로 풀어냈다. 소녀는 실상 사랑의 감정 따위는 없는 먼별에서 온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사랑은 죽음과 맞바꾼 감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외친다. “이 옷만은 가져갈 거예요.”

서하진은 소녀가 떠난 지 3년 후의 일을 그렸다. 소년 김환에게 죽은 소녀와 너무나 닮은 전학생 윤희영이 나타난다. 외모며 행동 하나하나가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윤희영에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원작 ‘소나기’를 오마주한 후배 문인들의 속편은 이렇듯 소녀가 죽은 지 며칠 후에서 십여년 후까지 시점이 다양하다. 전개 방식도 리얼리즘에서 판타지까지 아우르지만 원작의 감동을 따라가지는 못한다.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