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나쁜 소식 전담 장관’

입력 2015-06-03 00:10

지난달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재임 1989∼93년)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Pot Shards)’에는 ‘나쁜 소식 전담 장관(minister of bad news)’이라는 재미난 표현이 나온다. 대통령이 꼭 알아야 할 언짢은 일들을 가감 없이 직접 보고해 주는 장관이나 측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범접하지 못할 상관에게 직언이나 자연스러운 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인 셈이다. 그레그는 CIA 한국지국장(1973∼75년) 시절, 국내 현안 등에 대해 비교적 속마음을 주고받았던 경호실장 박종규에게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나쁜 장관’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유신 독재를 간접 비판하면서 강압적인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해 누군가가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줘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가 어느 날 박 대통령으로부터 골프 초대를 받았다. 골프를 할 때나 저녁 자리에서 어떤 고위층 참석자도 대통령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매우 꺼려하는 것을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경직된 자세의 국방부 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은 마치 웨스트포인트 신입 생도 같았다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박종규로부터 ‘나쁜 장관’ 필요성에 대한 자신의 조언을 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조직의 리더에게 비판적 조언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판을 충분히 알고 일을 강행하는 것과 앞뒤 분간 못하고 처리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리더십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판의 논지를 이해하고 있는 리더는 분석과 대응 방안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리더십 전문가들은 나쁜 소식일수록 그대로 신속히 전하라고 조언한다. 조직원들은 위기 자체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란다. 나쁜 소식을 놓고 토론하면 구성원들 사이에 극복 의지와 책임감, 동료 의식이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지금 우리네 정치 지도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나쁜 소식 전담 장관’이 아닌가 싶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