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무용계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협업(協業)’이다. 영상, 패션, 미술, 디제잉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과의 만남을 통해 색다른 작품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지난 2∼3년간 국내 무용계에서 가장 화제를 뿌리는 이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다.
정구호는 친구인 현대무용 안무가 안성수가 이끄는 픽업그룹의 무대의상을 오랫동안 담당해 왔다. 그러다가 2012년 안성수가 안무를 맡은 국립발레단의 ‘포이즈’에서 정구호는 의상은 물론 무대 디자인, 영상, 음악, 연출까지 맡았다. ‘포이즈’로 무용팬들의 시선을 끈 그는 이듬해 국립무용단에서 안성수와 ‘단’, 한국무용 안무가 윤성주와 ‘묵향’을 연달아 선보여 다시 한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올해 무용계와 협업할 아티스트 중 눈에 띄는 이들은 영화감독들이다. 설치미술 작가 겸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 ‘고진감래’의 감독인 박찬경, 영화 ‘마담 뺑덕’ ‘헨젤과 그레텔’의 임필성, 영화 ‘달콤한 인생’ ‘장화 홍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등이 그 주인공이다.
우선 박찬경 감독은 5∼7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일차원’에서 시각 연출을 맡았다.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직접 안무한 ‘공일차원’은 0과 1의 언어로 이뤄진 컴퓨터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박 감독은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무대와 영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임필성 감독은 국립무용단의 간판무용수로 안무에 도전하는 최진욱과 손을 잡았다. 11∼1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적(赤)’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 끝없이 춤을 춰야 하는 소녀를 다룬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프리퀄(Prequel, 원작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에 해당하는 무용극이다.
김지운 감독은 오는 11월 공연될 국립현대무용단의 ‘어린 왕자’ 연출을 맡았다. 생텍쥐페리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김 감독이 대본과 연출을 맡고, 안애순 감독이 안무를 할 계획이다. 김 감독과 안 감독은 2005년에도 ‘세븐+1’이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영화감독이 무용 연출을 하는 것은 이미 국내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해외에서는 장이머우 감독이 중국 국립중앙발레단과 함께 자신의 영화 ‘홍등’을 발레로 만들면서 연출을 맡은 적이 있고, 국내에서도 현대무용 안무가 정의숙이 변혁 감독과 ‘윤이상을 만나다’ ‘자유부인’ 등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호흡을 맞췄었다.
임 감독은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아티스트들이 여러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다소 폐쇄적이어서 장르끼리 교류가 적다”면서 “하지만 근래 들어 젊은 아티스트들일수록 경계를 오가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서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영화감독들, 현대무용을 연출하다… 무용계와 다양한 협업 잇따라
입력 2015-06-03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