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입력 2015-06-03 00:20

9년 전 배낭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장 큰 게스트하우스, 1층 로비에서는 파티가 한창이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하나둘 여행자가 모여 무리를 이루더니 만국 공통의 언어인 몸짓을 포함해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멘도사에서 결혼하는 친구를 축하하려고 영국에서 왔다던 남자를 기억한다. 남미 작은 마을에서는 작은 결혼식과 먼 곳에서 온 하객들이 있었다. 잠시잠깐 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밤새 축하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친구 니콜이 제주 게스트하우스 뒷마당에서 결혼식을 하겠다 말했을 때 나는 그 영국 남자가 떠올랐다. 하여 이틀 전부터 제주에 머물면서 결혼식을 도왔다. 니콜의 어릴 적 친구들도 일찍 와 음향을 설치하거나 꽃병을 장식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날씨가 돕지 않았다. 토요일 새벽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주르륵 내리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식이 시작되는 정오가 가까워지도록 비는 그치지 않았고 신부의 걱정도 멈추지 않았다. “괜찮고말고. 오래 기억되는 축제가 될 거야.” 나는 니콜의 손을 잡고 몇 번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맡은 일은 ‘시 낭독’과 신랑신부 소개였다. 시를 읽어주는 일은 오래전부터 니콜과 내가 해온 놀이다. 우리는 시집을 살 때마다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서로에게 읽어주곤 했다.

정오가 되자 여든 넘은 신랑의 할머니부터 네 살 된 신부의 조카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한마음으로 신랑 신부가 선물로 준비한 햇빛막이 우산을 들고서 뒷마당에 모였다. 나는 맨발로 나가 비를 맞으며 시를 읽었다. 내가 준비한 시는 심보선의 ‘인중을 긁적거리며’였다.

누구 하나 인상 찌푸리지 않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는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졌다. 신랑 신부 어머니들이 주례 대신 편지를 읽자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의 결혼식은 신랑 신부뿐 아니라 하객들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