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감염병 대처의 기본인 ‘초동 방역’에 실패하면서 화를 키웠다. 신종플루 등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거듭 지적됐던 방역체계의 문제점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참에 ‘감염병 대응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까지 확인된 메르스 환자 18명 중 17명은 첫 환자 A씨(68)에게서 옮은 ‘2차 감염자’다. 이 가운데 11명은 보건 당국의 최초 감시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비격리자’였다.
A씨 역시 지난 11일 증상이 나타난 뒤 의료기관 4곳을 거친 뒤에야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는 중동여행 전력을 얘기하지 않았고 의료진도 이런 사항을 파악하는 데 소홀했다. 그 사이 다른 환자와 가족, 의료진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감염 의심자가 중국으로 출국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초기 방역의 구멍 탓에 감염자가 속출하고 불안감이 고조되다 급기야 ‘메르스 괴담’ 유포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비슷한 전례는 과거 신종플루 유행 때도 있었다. 2009년 국내에서 발생한 첫 신종플루 사망자는 발병 후 확진 판정이 늦어져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쳤다. 태국에서 귀국한 뒤 사흘 만에 증상을 호소했지만 1주일이 지나서야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가 처음 찾았던 의료기관은 호흡기 증상이 없다며 별 조치 없이 귀가시켜 화를 자초했다. 국민 불안이 가중되면서 인터넷에 ‘신종플루 찌라시’가 떠돌던 것도 지금 상황과 판박이다.
전문가들은 ‘초기방역 실패→감염 확산→괴담 유포→불안 증폭’으로 이어지는 감염병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선제적 방역 시스템’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안이 터질 때마다 재연하는 ‘뒷북’ ‘땜질’ 대응을 이번에야말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현장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보건 당국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대응 지침’에만 집착해 격리 대상자를 ‘감염자와 2m 이내 밀접 접촉자’로 국한했다. WHO 지침은 이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 어떻게 옮겨지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밀접 접촉’에 의한 전파만 가능하다고 편의대로 해석해 ‘격리 범위’를 좁게 설정하는 우를 범했다.
감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합동대책반은 지난 31일에야 만들어졌다. 첫 환자 발생 후 10여일이 지나고 환자들이 급속히 늘어난 뒤였다. 초동 대응 때부터 ‘민관협동’ 체계가 가동됐다면 상황이 달랐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감염병 전문의는 “첫 환자가 나왔을 때 적극적으로 다수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엄격한 조치를 취했다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의료기관, 특히 중소병원에 대한 감염병 관리 지원이나 교육·홍보 부재도 이번 메르스 확산에 한몫했다. 첫 환자 A씨가 확진 전까지 찾았던 병·의원은 모두 1·2차 의료기관들로 병원 내 감염관리 시설과 인력이 열악한 실정이다. 메르스 등 감염병 의심환자들이 처음 찾는 곳은 대부분 동네 병·의원이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대응지침만 만들어놨지 1·2차 의료를 담당하는 일선 의사들에게 메르스 같은 해외 전염병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거의 안됐던 게 가장 큰 문제다. 이 때문에 의사들이 메르스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서 “일선 병원, 특히 지역병원의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고려대 구로병원 교수)은 “‘방역에는 국경이 없다’는 기조로 신종 감염병에 대비한 인력과 예산, 시스템을 평시에 갖춰놓아야 한다”면서 “감염병별로 환자들이 안심하며 머물 수 있는 맞춤형 격리·치료 시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신훈 기자 twmin@kmib.co.kr
땜질식 아닌 ‘선제 방역’으로 감염병 대응체계 확 바꿔야
입력 2015-06-02 03:00 수정 2015-06-02 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