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사냥’ 배창호 감독 철로 투신… 전동차 진입했지만 목숨 건져

입력 2015-06-02 02:28

영화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을 만든 배창호(62·사진) 감독이 1일 오전 5시58분쯤 서울 대치동 한티역의 지하철 분당선 승강장에서 철로로 투신했다. 이후 곧바로 전동차가 들어왔으나 바퀴가 닿는 선로 사이의 빈 공간에 가지런히 쓰러진 덕에 목숨을 건졌다. 배 감독은 수개월 동안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얼굴에 가벼운 외상을 입고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갔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 안정을 취하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배 감독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강박증과 함께 수면장애 등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배 감독은 선로 가운데에 쓰러져 있었고 전동차가 그 위를 지나갔지만 다행히 차체 하부와 선로 바닥 사이 공간에 있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 감독의 가족은 “시나리오 작업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수개월간 수면장애를 겪어왔지만 이 정도로 예민하고 힘든 상황인 줄은 몰랐다”면서 “정신과 진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CCTV 확인 결과 승강장에서 배 감독 혼자 서 있다 떨어지는 장면이 찍힌 만큼 투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배 감독은 투신했다는 직접적인 진술은 하지 않았다. 한티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다.

영화 ‘별들의 고향’을 연출한 영화계 거장 이장호(70) 감독은 이날 배 감독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찾았다. 이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매일 밤잠을 못 잤다고 들었다. 최근 만났을 때 살이 빠지고 힘이 없어 보였다. 평소 과민하고 작품에 빠지면 미치는 기질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면부족으로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 같다”며 “배 감독이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현재 팔다리를 움직이지만 정신적 쇼크가 심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고 전했다. 배우 안성기 박중훈씨도 병원을 찾아 배 감독을 위로했다.

‘별들의 고향’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배 감독은 1980∼90년대를 풍미했다. 2000년대 중반 영화산업의 무게중심이 충무로 제작사에서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와 멀티플렉스로 이동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영화 제작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