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쇼핑몰·대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出口는 안전사고 入口

입력 2015-06-02 02:23
1일 서울 성북구의 한 복합쇼핑몰 지하주차장 출구를 빠져나온 승용차가 도로로 들어서고 있다. 반사경이나 경보장치가 없는 이 출구 바로 앞에는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지나는 횡단보도가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10시15분쯤 서울 성북구의 한 복합쇼핑몰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던 이모(26)씨의 쏘나타 차량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최모(38)씨를 들이받았다. 다행히 상처가 크지 않아 간단한 병원치료로 끝났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쇼핑몰 지하주차장 출구 앞에 있는 보행로는 원래 약 5m였지만 최근 3m 미만으로 줄었다. 우이신설도시철도 공사 때문이다. 공사장을 피해 그려진 횡단보도와 지하주차장 출구 사이 거리는 1m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하주차장에서 나온 차량은 출구의 과속방지턱을 넘자마자 횡단보도로 진입하게 된다.

운전자의 시야는 건물 외벽에 가로막히지만 사각지대를 보여줄 반사경은 따로 없다. 차가 나오는 걸 알려주는 경보음은 지하주차장 안에서만 울릴 뿐이고, 보행자를 위한 경광등은 없다. 지하 7층, 지상 14층 규모의 쇼핑몰인 데다 주변 유동인구도 많은 편이지만 차와 보행자가 서로를 알 수 없는 기형적 구조다. 이 건물 관계자는 안전대책을 묻자 “주말에 통행이 많을 때 차량 유도 인원을 임시 배치한다”고만 답했다.

대형 복합쇼핑몰과 대단지 아파트 등 번듯한 건물의 지하주차장이 ‘위험한 장소’가 되고 있다. 출입구에 반사경, 경고장치 등이 없어 보행자 사고가 빈발한다.

1일 과속방지턱과 반사경, 경광등 등이 설치되지 않은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선 차량끼리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050가구가 사는 대단지인 데다 지난해 8월 입주 이후 2∼3건의 사고가 이어졌지만 아무런 안전조치가 없다. 민원이 잇따르자 관리사무소 측은 “LH공사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교신도시의 아파트단지엔 입주 초인 지난해 2월부터 지하주차장 곳곳에 반사경을 설치하라는 주민 민원이 빗발쳤다. 한 입주민은 “지하주차장이 너무 기형적이라 자동차 게임의 고난도 코스 같다. 가끔 ‘던전(지하 감옥)’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반사경은 7개월이 지난 뒤에야 설치됐다.

위험천만한 지하주차장은 곳곳에 퍼져 있다. 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8월 ‘아파트 도로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면서 10대 위험요인 중 하나로 ‘운전자 시인성(視認性) 불량’을 꼽았다. 지하주차장 출입구 등에서 자동차 및 보행자를 사전에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공단은 지난해 전국 아파트 단지 중 가구 수가 많고 교통안전에 취약한 50개 단지를 선정·조사한 뒤 지하주차장 출입구 등 102곳의 운전자 시인성이 불량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물주에게 안전장치 설치 의무는 없다. 현행 주차장법에는 지하주차장 출입구에 도로반사경 등 안전장치를 둬야 한다는 규정조차 없다.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조명시설, 과속방지시설, 도로반사경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에 근거해 민원이 들어오면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는 형편이다. 쇼핑몰 지하주차장 사고에 대한 국민일보의 취재가 시작되자 성북구는 부랴부랴 “현장 답사 결과 반사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곧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지하주차장 관련 안전조치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면서도 “지나친 규제 조항을 만들 경우 행정절차가 복잡해지므로 안전장치의 필요성을 교육하고 홍보해 자진 설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전수민 김판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