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 발언이 정국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박 대통령이 실제로 국회의 시행령 수정권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정국은 혼돈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공은 새누리당에 넘겨졌다. 비주류가 주축인 새누리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이 던진 초강수에 어떻게 대응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만약 새누리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여 국회법 개정안의 무력화로 입장을 유턴할 경우 여야가 충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새누리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을 시도한다면 여권에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던질 경우 김 대표는 ‘박근혜냐, 유승민이냐’라는 선택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에겐 너무나도 힘든 양자선택이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 뜻을 존중할 경우 협상을 주도했던 유승민 원내대표의 입지는 크게 약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만약 김 대표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거부당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결을 시도한다면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김 대표는 일단 박 대통령 생각 쪽으로 기운 분위기다.
김 대표는 1일 박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과 우리 당의 뜻이 다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충분한 검토의 결과로 말씀하신 걸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또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당의 방침을 묻는 질문을 받고 “만약이라는 얘기는 할 수 없다”고 답을 피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이 ‘위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라며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는 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당 기구에서 균형감각 있는 헌법학자들을 불러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 대표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거부권이) 넘어오면 여야 각 당이 내부적으로 의총 등의 절차를 통해 의논하고 투표는 자유투표로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의 발언이 알려지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개정안이 국회로 되돌아올 경우 박 대통령과 보조를 함께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럴 경우 야당은 강력히 반발하겠지만 당청 갈등은 수면 아래로 잠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당내 세력의 반발이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국회법 개정안이 강제성이 없는 만큼 위헌 소지가 없는데도 청와대가 지나치게 반응한다는 기류가 여전하다.
또 김 대표가 지난달 29일 새벽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진 것도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청와대와 행동을 함께할 경우 “그때는 왜 찬성표를 던졌느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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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2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