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두 딸 엄마인 김모(34)씨는 이번 주말 경기도에 있는 대형 워터파크에 놀러가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아이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두려워서다. 공기 전파는 안 된다는 정부 설명은 들었지만 1일 격리 대상자가 수백명으로 늘어났다는 발표를 듣고 당분간은 외출을 자제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메르스 사태’가 정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공포가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막연한 공포감은 당장 외출 자제, 지역 행사 취소 등의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3차 감염자 발생 등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가뜩이나 침체된 국내 경기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4월 이후 갈수록 내수경기에 충격을 줘 경제에 발목을 잡았던 세월호 사고의 재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두 사건은 초동대응 실패에 따른 정부 정책 불신이 커졌다는 측면에서도 닮아 있다.
당장 국내 주식시장에서 여행·레저 관련주가 급등락하는 등 영향을 받고 있다. 1일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GKL은 4%대 하락한 3만9600원에 거래를 마쳤고,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등은 장 초반 7∼8% 급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국내 환자가 중국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삼성증권 전종규 연구원은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게 메르스 위험국으로 부상한 데다 최근 엔화 약세로 부상한 일본이라는 경쟁상대가 존재하고 있다”면서 “중국인 입국객 수요가 10% 감소하면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소비 위축 효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본격적인 여행 대목이 시작되는 상황에 전염병 공포가 퍼지면서 여행업계는 물론 호텔과 백화점, 외식업계 등의 소비 위축도 우려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소비자심리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3월 100까지 낮아지기도 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사고 이후의 타격 정도는 아니더라도 관광 분야 등 내수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경제 버팀목인 수출 경기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발표한 ‘5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0.9% 감소했다. 지난 1월 -1.0%, 2월 -3.3%, 3월 -4.5%, 4월 -8.0%로 점차 감소 폭이 커지다가 급기야는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13.9%)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인 것이다. 수입액도 15.3% 감소해 5개월 연속 두자릿수 감소세를 보여 불황형 흑자를 이어갔다. 전반적인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지난해 말부터 심화된 글로벌 환율전쟁의 타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으로 조성된 ‘중동붐’도 메르스 사태로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메르스 공포… 한국경제 덮치나
입력 2015-06-0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