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메르스 음모론

입력 2015-06-02 00:10

전국 방방곡곡의 하천에서 변사체들이 발견된다. 원인은 숙주인 인간의 뇌를 조종해 익사시키는 변종 기생충 연가시. 짧은 잠복기간에 치사율은 100%다(영화 ‘연가시’). 호흡기 감염 속도가 초당 3.4명에 치사율 100%라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한반도를 덮친다. 정부는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폐쇄한다(영화 ‘감기’).

국내 대표적인 감염재난 영화들이다. 공통 결말은 격리된 가족을 살리려는 주인공들이 사투를 벌여 치료 백신을 구한다는 것이다. 근데 ‘연가시’에선 음모가 드러난다. 백신 대박을 노린 제약회사가 탐욕에 눈이 멀어 연가시에 감염된 개를 물에 던져놓은 게 들통 나기 때문.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제약사 음모론은 가끔 등장한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 때도 그랬다. 타미플루를 만드는 다국적 제약사 로슈 등과 결탁된 세계보건기구(WHO)가 계절 독감보다 약한 신종플루의 위험성을 부풀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외부 전문가위원회가 조사에 나섰지만 결탁설은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제약사들의 거대한 로비를 생각하면 뒷맛이 씁쓸하다.

국내에서 파문이 확산 중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관련해선 황당한 음모론이 나온다.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방에 올라온 ‘한국 메르스는 미군의 실험일 수 있다’는 글이 그것이다. “미국 네오콘의 지시에 의한 미군의 실험 또는 백신 장사용 사전포석일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다양한 그래픽과 함께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괴담도 퍼진다. 메르스 발생 지역·병원 등이 적시된 정보들이 떠돌아다닌다. 일부 맞는 내용도 있지만 근거 없는 소문이 적지 않다. 정부가 괴담 유포자를 엄벌하겠단다. 하지만 괴담 확산의 빌미를 누가 제공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유언비어는 정보를 통제하는 사회, 정부를 불신하는 사회에서 넘쳐나는 법이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