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보고 조리 보고 까다롭게 정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인구… 어떻게 선정하고 어떤 논란 있나

입력 2015-06-02 02:39

"공은 둥글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서독을 우승으로 이끈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의 이 말은 누구도 경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최근엔 야구공의 실밥수와 축구공의 가죽조각수, 농구공의 재질 등 둥근 공에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국내 프로 스포츠 종목들도 공 때문에 늘 시끄럽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비거리가 길어지는 '탱탱볼' 논란을 빚었다. 프로농구는 1년 넘게 공인구 없이 보내면서 구단들의 불만을 샀다. 프로농구연맹(KBL)은 1일 '몰텐'을 공인구 업체로 선정했다.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전용배 교수는 "구기 종목에서 사용하는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짜릿한 긴장감을 준다"며 "사람들의 시선이 공에 집중되는 만큼 공인구의 홍보효과도 크고 관심도 높다"고 말했다.

◇프로 스포츠 공인구의 선정방법은=각 프로 스포츠 종목의 단체들은 각 구단이 동일한 환경에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규정에 따라 철저히 공인구를 선정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용품시험소에서 야구공의 반발계수 등을 재고 있다. 반발계수는 포신에 공을 장착해 초속 75m로 콘크리트 벽을 향해 쏜 뒤 튀어나오는 속도로 측정한다.

KBL은 각 구단 선수들에게 제조업체별 선호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공 속의 공기를 조사하기 위해 공의 아랫면을 1.8m 높이에서 코트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윗면이 1.2∼1.4m 높이까지 튀어 올라야 공인된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 측정을 의뢰하고 있다.

공인구 만큼 중요한 게 공인구 제조업체다. KBO는 매년 야구공 제조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공인구를 제공한 스카이라인과 빅라인, ILB, HND에 ZD 스포츠가 올해 새롭게 포함됐다. 구단은 KBO가 발표한 공인업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KBO는 내년 시즌부터는 단일구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5개사의 공인구는 가죽의 느낌, 실밥의 굵기 등이 조금씩 달라 투수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K리그는 올해 공인구로 아디다스 ‘커넥스트15’를 사용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2010년부터 K리그 공인구를 제공해 왔다. KBL은 1983년 출범 첫해부터 2013∼2014시즌까지 ‘스타스포츠’ 공을 사용하다 지난 시즌부터 공인구 교체 작업에 나섰다. 한국배구연맹(KOVO)는 출범 첫해부터 ‘스타스포츠’의 공만 사용하고 있다. KOVO는 프로배구가 출범한 2005년부터 ‘뉴챔피온’을 사용하다 2010∼2011 시즌부터 ‘그랜드챔피온’으로 바꿨다. 국제 대회에서 사용하는 ‘미카’와 유사한 반발력 등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합성고무만 사용하던 것에 천연고무를 혼합해 탄성을 보강했다.



◇말썽꾸러기 공인구=2013년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브랜드 순위에서 나이키는 24위, 아디다스는 55위였다. 그런 나이키도 아디다스에 열세인 종목이 있다. 축구다. 2013년 축구매출에서 아디다스는 24억 달러(약 2조4417억원), 나이키는 19억 달러(약 1조9339억원)였다. 아디다스가 1970년 이후 월드컵 공인구를 제작하면서 ‘축구=아디다스’라는 이미지를 만든 덕이었다.

그만큼 공인구 제조업체들은 마케팅과 홍보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공인구 판매로 벌어들이는 액수도 만만치 않다. 프로야구의 경우 연간 각 구단이 1, 2군 합쳐 사용하는 야구공만 200∼250박스다. 개수로 2만4000개에서 3만개다.

공인구 시장이 커지다 보니 크고 작은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스카이라인과 빅라인, ILB는 최근 중국과 대만에서 값싼 야구공을 들여와 KBO 로고와 문구만 인쇄해 판매한 것이 들통이 났다. 현재 사기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짝퉁’ 야구공인 줄 모르고 공을 구매한 9개 구단은 사기 피해자가 됐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구단들이 구매한 짝퉁 공의 가격은 최소 4억원에서 최대 8억원이나 됐다.

HND는 반발계수가 기준치 상한선을 0.004 초과한 0.4414이나 되는 공을 구단에 제공한 것이 KBO 자체 조사 결과 드러났다. 반발계수가 0.001 높아질수록 타구 비거리는 20㎝가량 늘어난다. 이 공을 홈경기 공인구로 사용한 롯데 자이언츠는 “탱탱볼을 썼다”며 비난을 받았다.

KBL은 다른 이유 때문에 구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2013∼2014시즌까지 ‘스타스포츠’의 공을 사용하던 KBL은 지난 해 7월 나이키와 구두 합의를 하며 공인구 제공 업체 교체에 나섰지만 협찬·지원 등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결국 지난 시즌을 공인구 없이 나이키 공으로 치러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KBL이 ‘몰텐’을 공인구 업체로 선정하며 협약식을 체결했지만 구단의 불만은 고조된 상태다.

한 구단 관계자는 “올 시즌은 한달이나 앞당긴다면서 공에 적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면 어쩌라는 것이냐”며 “KBL의 행정력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