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수정권’ 충돌] ‘정치 불신’ 高高… “정치 개혁” 목소리 高高

입력 2015-06-01 02:36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국회법 개정안 ‘끼워넣기식’ 통과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대(對)정치권 행보는 어떻게 될까. 박 대통령이 그동안 드러낸 정치권에 대한 인식은 불신 그 자체다. 각종 개혁 입법과제 이행을 위해선 동반자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개혁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정치권에 대해선 낮은 평가를 해왔다. 박 대통령은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한층 강도 높은 정치개혁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대(對)정치권 행보는=박 대통령이 우선 1일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국회법 개정안 등에 대해 어떤 수위의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사례로 규정하면서 재고해줄 것을 강력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치권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은 1주일간의 와병 이후 첫 공식 일정이었던 지난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정치인들과 정치가 국민 염원을 거스르는 것은 개인 영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정치권을 정면 비판했다. 반(反)개혁은 개인의 영달·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라고 비판하면서 정치권의 부패 관행을 강하게 질타한 것이다.

또 올해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이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데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수차례 국회를 비판한 바 있다. 지난 6일에는 “이것(경제 활성화 법안)을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인지 묻고 싶다. 우리 정치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수차례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최근 회의에서 “현장을 모르고 나오는 법” “막 나오는 법들”이라고 지적하고, 지출 계획을 짤 때 재원조달 계획도 함께 마련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강조하면서 무분별한 재정 지출을 야기하는 의원입법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야당 입법연계 일상화를 우려하는 청와대=청와대는 경제활성화·민생법안의 국회 통과가 계속 지연되는 상황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처럼 야당의 연계 전략이 앞으로 일상화되는 것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국정과제 관련 법안이 계속 표류하고 있는데 야당이 앞으로 사사건건 행정입법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지난 29일 별도 입장발표를 통해 “국회법 개정 강행 이유가 공무원연금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강력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인사는 “개혁의 첫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 말고도 앞으로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개혁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데 그때마다 야당의 ‘걸고 넘어지기식’ 연계 전략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시행령 수정 요구는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해야 가능하다”며 진화에 나섰음에도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에 따른 행정마비 사례를 담은 참고자료를 준비하다 내지 않기로 하는 등 이날 추가 입장 표명은 자제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