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병합 등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비롯된 서방의 제재에 러시아가 유럽연합(EU) 정치인 89명의 입국을 금지하는 맞불을 놨다. EU와 회원국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면서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31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EU는 러시아의 조치에 대해 성명을 내고 “러시아는 EU 인사들의 입국금지 명단을 발표하면서 그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어떤 법적 근거나 기준, 과정 등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마르크 루테 네덜란드 총리는 “러시아가 지난 28일 여러 EU 국가 대사관에 러시아 입국을 허락하지 않을 인사들의 명단을 건넸다”면서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국제법에 기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조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독일 외무부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수단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면서 “만일 러시아 당국이 이렇게 함으로써 EU가 제재에 대한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러시아 외무부 관계자는 타스통신에 “입국 금지가 EU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것”이라며 “이 사람들이 왜 입국금지 명단에 들어갔는지 이유는 간단하다”고 말했다.
유럽 언론들은 우베 코르세피우스 유럽의회(EC) 사무총장과 닉 클레그 영국 부총리, 말콤 리프킨드 전 영국 외무장관 등이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보도하면서 “리스트에 있는 다수는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계속해온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러시아는 자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서방 세력의 비난을 계속해서 묵살하고 있다”면서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악화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이런 가운데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옛 소련권에서 반(反)러시아의 기수였던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국적을 부여하고 오데사 주지사로 임명해 러시아와의 새로운 갈등을 예고했다. 이는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활동이 강한 지역에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을 보내 동부지역 반군 및 러시아에 앞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2004∼2013년 조지아의 대통령을 지내면서 EU 및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등 강력한 친서방 노선을 밀어붙여 러시아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제재에 화난 러 “EU 인사 89명 입국 금지”
입력 2015-06-01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