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기업은 노비 공무원은 귀족”… 호텔 CEO, 리커창 총리에 실태고발 공개서한

입력 2015-06-02 02:49
지난 3월 중국의 유력 경제주간지인 ‘경제관찰보’에 한 중저가 호텔 체인 최고경영자의 편지가 실렸다. 쥐즈수이징(桔子水晶·orange hotel)이라는 호텔 체인의 우하이 대표가 리커창 총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었다. 이 편지는 “정부가 기업에 잘못을 한다면 그건 인민에게 잘못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시작됐다. 중국에서 민영기업은 ‘노비’이고, 공무원은 그들을 부리는 ‘귀족’ 같은 존재라는 직설적이면서도 절절한 토로가 이어졌다. 공무원들의 ‘갑질’이 기업 운영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한 것이다. 우 대표는 귀족들이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관리·감독과 법률 조항이 불분명해 부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구구절절 써내려갔다. 한번 밉보였다간 보안을 이유로 공안요원들이 투숙객 신분검사를 나와 손님을 쫓아내는 일, 엄청난 명절 떡값을 받아내는 관행 등도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경제관찰보는 우 대표가 베이징 둥청(東城)구의 정협위원으로 여러 차례 기업 운영상 어려움을 공개석상에서 토로했지만 바뀌는 것이 없자 직접 총리에게 공개서한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소개했다. 가족과 지인들은 보복을 걱정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 대표의 공개서한은 개인적 보복이 아닌 다른 기업가들의 엄청난 지지와 정부의 변화로 이어졌다. 공개서한이 발표된 지 54일이 된 지난 14일 중국 국무원 판공실은 공안부와 세무총국, 공상총국, 위생부 등 기업 운영을 관장하는 정부 전 부문 대표들을 모두 중난하이(中南海)에 불러들였다.

우 대표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라는 자리였다. 우 대표는 행정권력이 실질적으로 간소화되도록 정부 기능을 시장 기능에 맞춰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 언론들도 이 만남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우 대표 공개서한 사건은 중국 기업 운영의 음성적 비용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사건에서 확인된 중국정부와 언론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LG경제연구원은 “정부의 통제를 받는 중국 언론매체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 자체가 정부의 높은 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