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8일 강원도 철원 철원감리교회(곽영준 목사) 주보에는 이색 광고가 실렸다. 성도들이 직접 만든 십자가를 공모한다는 내용이었다. 마감일은 이듬해 3월 20일. 십자가 공모전은 이 교회가 설립 60주년(2014년)을 맞아 계획한 기념사업이었다.
곽영준(55) 목사는 예배 때마다 공모전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잘 만든’ 십자가를 출품한 성도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성패를 자신하기는 힘들었다.
‘공모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출품되는 십자가가 10점만 넘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마감일이 되자 출석교인 약 1000명 중 140여명이 직접 만든 십자가를 내놓았다. 십자가를 2∼3개 출품한 이들도 있어 출품작은 160점이 넘었다. 작품 수준도 기대 이상이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어 시상이 불가능했다. 시상 계획은 접고 이들 십자가를 전시한 갤러리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해 4월 탄생한 곳이 교회 4층에 있는 66㎡(약 20평) 크기의 ‘십자가 아트 갤러리’다. 철원감리교회는 현재 교인들의 ‘수제(手製) 십자가’ 160여점이 상설 전시돼 있는 유일무이한 교회다.
◇나무 철 폐품 돌…각양각색 재료의 십자가가 모이기까지=지난 30일 찾은 갤러리에서 확인한 십자가들은 다채로웠다.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 종이컵을 쌓아 만든 십자가, 못을 구부려 제작한 십자가, 쿠션에 수(繡)를 놓아 만든 십자가, 돌을 깎아 만든 십자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 관람객 시선을 사로잡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대다수 작품이 십자가를 만든 적이 없는 ‘초보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듦새가 훌륭했다. 곽 목사는 “이런 십자가들이 탄생한 것은 성령의 역사일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일전에 한 목사님이 갤러리를 둘러보신 뒤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저희 교회를 따라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공모전을 진행했죠. 하지만 저희 교회만큼 출품작이 많지 않아 공모전은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희 교회는 달랐습니다. 십자가 만들기 ‘붐’이 일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 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곽 목사가 십자가 공모전을 연 이유는 간단했다. 성도들이 저마다 십자가를 만들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 때문이었다. 자신 역시 십자가를 제작한 경험이 없었다. 경기도 안성 출신인 곽 목사는 감리교신학대를 나와 서울과 춘천 등지에서 목회를 하다 2012년 2월 이 교회에 부임했다.
“이전에 사역한 교회들에서는 교인들에게 십자가를 집에 꼭 걸어놓으라고 당부하곤 했습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사랑을 내포한 상징이자 기독교적 메시지가 담긴 성물(聖物)이니까요. 이번에 십자가를 만든 교인들 상당수가 그러더군요. 십자가를 만들며 주님의 보혈(寶血)을 실감했다고요.”
갤러리에는 곽 목사가 만든 십자가도 있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예수상을 본뜬 모양새의 나무 십자가였다. 십자가 아래에는 ‘오직 예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수년 내에 공모전을 다시 열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갤러리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십자가 퍼포먼스에 작품집 발간까지=곽 목사의 십자가 사랑은 유별난 구석이 많았다. 지난해와 올해 종려주일(부활주일 바로 전 주일)에는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의 뜻을 되새기는 ‘십자가 대행진 퍼포먼스’를 벌였다. 곽 목사와 교인 약 200명은 50㎏ 상당의 십자가를 걸머진 성도를 따라 철원 동송읍 일대를 행진했다. 곽 목사는 “감동적인 퍼포먼스였다. 앞으로도 매년 종려주일에 같은 행사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철원감리교회는 올해 부활절에 ‘십자가 아트 갤러리 작품집’을 발간했다. 갤러리에 전시된 십자가들 모습이 담긴 123쪽 분량의 사진집이다. 곽 목사는 “책자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배포했다”며 “십자가 제작 문화가 다른 교회에도 확산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교회에서는 곽 목사처럼 십자가 사랑이 지극한 성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손종태(70) 장로는 먹다 남은 캡슐커피 뚜껑을 십(十)자 모양으로 붙인 작품을 지난해 공모전에 내놨다. 그는 “십자가를 만들어 보니 십자가의 의미를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이라면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곧 십자가니까요. 십자가 만들기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십자가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철원=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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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⑩ 강원도 철원감리교회 곽영준 목사의 십자가 목회
입력 2015-06-01 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