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문흥호] 중·러 전략적 협력의 겉과 속

입력 2015-06-01 00:30

중·러 관계처럼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경우도 드물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한 러시아 왕조의 몰락과 소련 등장 이후 양국은 혁명 동지로서의 뜨거운 열정, 사회주의 이념·노선 투쟁, 무력충돌까지 경험했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시진핑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최근 양국 관계는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이들의 전략적 협력 배경은 무엇이며 한계는 없는가. 탈냉전 이후 러시아는 미국에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고 중국 역시 1989년 6·4 천안문 사건으로 인한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 미국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이를 매개로 중·러는 자연스럽게 전략적 동반자가 되었다. 미국에 대한 분노와 함께 경제적 이유도 이들의 밀착을 부추겼다. 러시아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고,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고성장 문턱에서 자원·에너지 문제로 고심했다. 결국 러시아는 거대한 규모의 에너지를 중국에 공급하는 동시에 국가재원 충당을 위해 중국이 원하는 첨단 군사 장비를 대량 판매했다. 중·러의 이러한 밀월관계는 과거 중국이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추구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물론 국가 간 관계가 늘 그렇듯 중·러 관계도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들은 과거 우호와 적대를 반복했던 사이다. 이는 중·러 전략적 협력의 겉과 속이 다른 이유다. 우선 양국은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에 대한 상호 인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러시아는 내심 중국의 ‘G2’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미국의 유일 패권을 제어할 수 있는 나라는 여전히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중국은 푸틴의 ‘강한 러시아’ 향수를 이해하면서도 러시아의 정치 경제적 미래에 회의적이며 특히 과거 기준으로 중국의 힘을 평가하는 데는 크게 반발한다.

중·러의 전략적 속내 차이는 유라시아, 연해주, 한반도 등에서 갈등을 키우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군사력과 중국의 경제력이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는 유라시아에서 중·러의 윈-윈 전략은 한계가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과거 영토에서 중국의 힘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현실이 못마땅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침투는 집요하게 확장되고 있다. 연해주와 접한 중국 동북지역은 중·러의 고질적인 국경분쟁 지역이다. 국경 문제는 일단 봉합되었지만 중국은 현재의 국경선에 불만이 많으며 러시아는 중국의 인적, 경제적 팽창을 심히 우려한다.

한편 중·러의 잠재된 갈등은 북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소련은 미국과 함께 한반도 문제를 주도했지만 러시아는 그 영향력을 전혀 승계하지 못했고 중국의 위세에 한참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푸틴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복원을 희망하며, 최근 북한과의 경협을 추진하고 김정은을 모스크바로 초청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하겠다. 중국은 겉으로 북·러 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이미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가 자국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중국이 아직은 관망하고 있지만 만약 러시아가 북한 내 기득권을 넘볼 경우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김정은이 김일성을 흉내내어 중·러 간에 줄타기를 하려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구태임을 매섭게 경고할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엔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대박을 꿈꾼다면 이웃 국가들의 전략적 속셈과 그 변화 과정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심한 국내 정치에 발목 잡혀 있을 여유가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