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여자 공학도가 많아지는 세상

입력 2015-06-01 00:20

공대 동기생 800명 중에 여자는 나 하나였다. 그것도 7년 만의 첫 여학생이었단다. 이제 확 달라졌다. 공대생 중 평균 15%가 여학생이다. “공대엔 왜 왔니?”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었다. 설마 요즘은 그런 말을 안 하겠지 싶지만, 여전히 듣는단다. 세월은 바뀌었지만 고정관념은 끈질기다.

취업난이 심각한 와중에 기업들이 이공계 출신을 선호하기 때문에 졸업 후에 다시 이공계 대학을 다니거나 복수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이 는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이공계 홀대가 별로 줄어든 것도 아닌데, 아마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현상일 게다. 하지만 여성 공학도가 많아지는 현상과 이공계 지원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비실용주의, 반실용주의, 비과학주의, 대충대충주의’ 같은 문제들을 고쳐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고, 각종 안전사고 문제도 그렇고, 이번 메르스 환자 확산 사태까지 보면 우리 사회의 일처리가 얼마나 꼼꼼하지 않은지, 얼마나 대충 일하는지, 얼마나 당장 피하려고만 하는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탄탄한 기술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그나마 좀 더 정직한 실무 관행을 만들지 않을까? 게다가 신중한 계획과 정확한 실무와 정직한 마무리와 꼼꼼한 뒤처리가 강점인 여성들이 엔지니어링 기술로 무장하고 사회 곳곳으로 진출한다면 우리 사회를 좀 더 합리적으로 좀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사항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이공계 여학생 비율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실무 진출은 바늘구멍이다. 수년간의 현장 실무훈련을 쌓아야 하건만 기술직보다 관리직으로 채용되는 졸업생 비율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 중에 살아 있는 이공계 지식과 윤리의식을 훈련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고위직 공무원은 더욱 희귀하다.

공학도를 단순한 실행 도구로만 보고 단기간에 쓸모를 뽑으려 하거나 말 잘 듣는 하위직으로나 쓰려 하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훈련받은 여성 공학인의 건투를 빈다.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