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최소 8일간 사회생활을 하다 중국으로 떠난 H씨(44)가 현지에서 확진 판정을 받아 메르스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 당국도 사태 대응 방식을 바꿔 앞으로는 3차 감염을 막는 데 총력을 모은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최장 11일간의 H씨 행적을 샅샅이 찾아야 하는 일이어서 엄청난 자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허술한 초기 역학조사가 대형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3차 감염 막아라”=보건 당국이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H씨로 인한 3차 감염이다. 당국은 H씨를 첫 환자인 A씨(68)로부터 병이 옮은 2차 감염자로 보고 있다. 지난 16일 아버지 C씨(76)를 병문안했을 때 병실에서 감염됐다는 것이다. 격리 대상이 아니었던 그는 26일 출국 전까지 최장 11일간 직장생활을 했고 보건소와 병원 응급실 등을 찾아다녔다. 증세가 나타나 감염력이 생긴 19일 이후부터 따져도 최소 8일간 3차 감염의 원인 제공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국은 처음엔 3차 감염 가능성을 낮게 봤다. A씨와 밀접히 접촉한 사람을 모두 파악해 격리 조치했다고 생각해서다. 사태 초기 감염자가 잇따라 나왔을 때 당국이 “방역 체계에 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던 이유다. 하지만 H씨가 나타나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29일 브리핑에서 “2차 감염에서 메르스의 전파를 끊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최악의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장 11일간 H씨 행적 추적해야=보건 당국은 우선 H씨의 밀접 접촉자 45명을 파악해 격리 조치했다. 국내서 접촉한 사람이 38명, 항공기 동승자(승무원 포함)가 7명이다. 기내 근접 접촉자로 지목된 탑승객 20명 가운데는 현재 1명만 귀국해 격리된 상태다. 나머지 19명은 현지에 머물고 있다. 권 정책관은 “상황을 안내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조기 귀국을 독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홍콩 보건 당국은 H씨와 한 비행기로 홍콩에 입국한 한국인 3명의 신원을 확인한 뒤 격리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년 홍콩 여성은 이날 메르스 감염 증세가 나타나 병원 전염병센터로 옮겨져 검사받고 있다. 홍콩 위생방역센터는 3차 감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약 200명을 추적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H씨는 홍콩에 입국한 뒤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까지 버스를 탔는데 이때도 약 10명이 동승했다.
또 H씨가 탔던 국적 비행기에는 중국인 59명과 미국 캐나다 영국 파나마인 1명씩 모두 63명의 외국인이 탑승하고 있었다. 보건 당국은 각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같은 층 다른 병실 환자 통한 3차 감염도 우려=그동안 격리 관찰 대상이 아니던 환자 F(71)·J(56)·K(79·여)·L(49·여)씨 등 4명을 통한 3차 감염도 우려된다. 네 사람 모두 첫 환자 A씨와 같은 층 다른 병실에 있어 ‘밀접한 접촉’ 가능성이 낮은데도 감염된 경우다. 접촉 시기는 15∼17일로 추정된다.
특히 J씨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던 중 가검물 검사를 통해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그간의 행적은 또 다른 역학조사의 대상이다. 권 정책관은 3차 감염 의심자에 대한 검사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가검물에 대한 검사 의뢰가 들어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당국의 방역망에서 벗어나 있던 H·J·L씨 등에 대한 역학조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활동력이 왕성한 40, 50대의 10여일간 행적을 샅샅이 찾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만원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거나 인구 밀집지역에서 불특정 다수와 접촉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보건 당국은 감염 의심 상황에 대한 신고를 적극적으로 받을 계획이다. 권 정책관은 “현재 가동 중인 에볼라 핫라인을 ‘메르스 핫라인’으로 이름을 바꿔 24시간 신고를 받겠다”고 말했다. 번호는 043-719-7777이다. 보건 당국은 메르스 감염 의심자 진찰 사실을 뒤늦게 신고한 의료진은 최고 2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는 사실을 대한의사협회를 통해 다시 통보했다.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자택 격리를 거부하는 감염 의심자 역시 각각 200만원, 3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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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30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