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큰 산을 넘었더니 국회의 ‘시행령 수정권’을 둘러싼 새로운 논란이 부상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라는 성과도 빛이 바랬다.
당청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상황이 더욱 악화돼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정면 충돌할 경우 여권은 최악의 내분 사태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와 청와대의 대결로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의 시행령 수정권을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여야가 이례적으로 힘을 합쳐 청와대와 대립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회로 대표되는 입법권과 청와대로 대표되는 행정권이 충돌하면 정국이 블랙홀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청 충돌…여권 집안싸움으로 쪼개지나=여권의 내분은 29일 새벽 본회의 표결에서 현실화됐다. 국회의 시행령 수정 권한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에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집중적으로 반대표와 기권표를 던진 것이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겸하는 김재원 윤상현 의원, 김태흠 의원 등 친박계를 중심으로 12표의 반대표가 나왔다. 반대표 모두 새누리당에서 나온 점도 여권 내부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기권표를 던졌다. 21표의 기권표 중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을 제외한 20표가 새누리당에서 쏟아졌다.
특히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나서 친박계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유승민 원내대표 지도부를 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우리가 야당의 공세를 얼마나 막아줬는데, 청와대가 등 뒤에서 칼을 꽂는다”는 격한 반응도 나온다. 당청이 충돌한다면 여권은 걷잡을 수 없는 내분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당청 간 전운이 고조되자 31일로 예정됐던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도 무기한 연기됐다.
하지만 당청 갈등이 수면 아래로 잠복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 발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입에 지퍼를 채우고 있겠다”고 말을 아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변수다. 황 후보자의 인준을 위해선 새누리당의 도움이 절실한 청와대가 당청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회와 청와대의 대립…입법부와 행정부가 충돌하나=청와대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할 경우 여권의 일부 세력이 야권과 연대해 청와대와 대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이 야당과 힘을 모아 청와대와 대결하는 격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충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 정국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대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시행령 등 행정입법을 둘러싼 입법부와 행정부 간 갈등의 역사는 짧지 않다.
행정입법은 행정부가 직접 법률을 토대로 제정하며, 주무부서의 발의로 차관회의를 거쳐 국무회의 심의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공포하게 된다. 행정입법은 국회에서 진행되는 복잡한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부는 그동안 국회의 간섭 없이 각종 규제 관련 업무나 행정조치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통로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모법(母法)이나 상위법에 근거하지 않거나 저촉되는 내용이 시행령 등으로 입안되는 사례가 있어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지속적으로 행정입법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며 행정부와 갈등을 빚어 왔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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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30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