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사자성어 문답정치

입력 2015-05-30 00:06

사자성어에는 ‘네 글자의 힘’이 있다. 풍자와 비유, 압축과 절제가 있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을 흡입하는 함축과 공감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유독 정치인들이 사자성어를 즐겨 사용한다. 정치 환경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네 글자 속에 절묘하게 녹여 정치적 파급력을 높이려 한다. 당 쇄신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요즘 그렇다. 사자성어 문답정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자성어 릴레이가 본격화된 시점은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막말’이 터지면서부터다. 문재인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퇴한 주승용 최고위원의 업무 복귀를 요청하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들고 나왔다. 촉나라 제갈량이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참형에 처했다는 그 유명한 고사성어다. 이에 다음날 주 최고위원이 ‘집사광익(集思廣益)’으로 반박했다. “읍참마속을 한 제갈량은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 한다’는 뜻의 ‘집사광익’도 강조했다”고 말했다. 열린 자세를 촉구하며 문 대표와 친노그룹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27일 공식 취임한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당내 계파정치의 폐해를 비판하며 맹자에 나오는 ‘우산지목(牛山之木)’을 인용한 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며 문 대표에게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요구했다. 우산지목은 ‘벌거숭이 우산이 원래는 아름다웠다’는 뜻이고, 백의종군은 ‘벼슬 없이 일개 평민의 신분으로 전쟁터에 참전한다’는 의미다. 문 대표는 27일 섬뜩한 느낌을 주는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내 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에 이어 다음 날에는 ‘백의종군’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만큼 새정치연합이 위기에 놓였다는 방증일 게다.

우스개로 사자성어로 따져보면 3종류의 정치인이 있다고 한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 필요할 때는 국민을 찾고 나중에는 국민을 가차 없이 팽개치는 ‘토사구팽(兎死狗烹)’, 국민은 안중에 없고 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스타일이 그것이다. 지금은 말만 번지르르한 수사(修辭)보다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가진 정치인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