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국내 감염이 열흘도 안돼 12명으로 늘었다는 안타까운 보도가 전해졌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2003년 아시아에서 발생한 뒤 많은 사망자를 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한 종류이다. 지구상의 바이러스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고 정체가 밝혀진 것은 20세기 중반에 불과하나, 4000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러스의 출현은 지구 초기 생물상의 등장과 함께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바이러스 중 일부는 풍토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의학적으로 풍토병은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전염성 질환을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저항성을 지니지만 외지인에게는 치명적이다. 이러한 풍토병이 다른 지역에서 발병하려면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곤충, 가축, 사람 등)가 지리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16세기 초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600여명의 소수 스페인 병사들은 멕시코 중앙고원에 위치한 아즈텍 문명의 중심지를 공격, 신대륙 정복을 시도했다. 아즈텍 제국은 스페인군의 30배에 이르는 병력으로 첫 전투에서 대승하였으나 첫 교전 후 거의 모든 아즈텍 병사들이 괴질로 죽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역전돼 스페인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는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지닌 스페인 병사들과 달리 아즈텍 병사들이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몇 주 만에 전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고, 이로 인해 스페인 군대의 신대륙 정복을 허용하고 말았다.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5가지 특성(체제, 물질대사, 생장증식, 자극반응, 적응진화)을 갖추지 못해 엄격한 기준으로 볼 때 생명체가 아니다. 이들은 숙주생물체 몸 밖에서는 입자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다가 알맞은 숙주세포를 만나면 증식하므로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중간단계로 여겨진다. 증식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빠르고 다양한 변이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있어 지속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일체유심이라 했다. 이들을 이겨내는 힘은 최상의 의료술과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와 희망을 딛고 발휘된다. 투병 중인 모든 분의 쾌유를 빈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사이언스 토크] 바이러스
입력 2015-05-30 00:10 수정 2015-05-30 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