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수 목사의 남자 리뉴얼] 내가 걷고 있는 길에서 길을 찾아라

입력 2015-05-30 00:56

2014년 여름, 한 달 동안 안식월이 주어졌다. 무엇을 할까? 있는 힘을 다해 살아온 나를 쉬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잘 쉴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 환경에서 벗어나 홀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과 다르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지금까지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 내가 나를 만나 대화하고 나와 화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나를 토닥여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40대를 보내며 수고한 내 인생을 위로하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길을 준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나와 대화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자연을 바라보며 마음을 넓히고 싶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던 가족들, 교회와 내게 맡겨진 사역, 미래에 대한 기도만 하기로 했다.

내가 걷는 일에 사용할 수 있었던 22일 동안 620㎞를 조금 넘게 걸었다. 네 개의 발톱이 빠졌고 물집은 발바닥 이곳저곳을 옮겨가면서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멀 때에는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생겨도 멈춰서서 아파할 겨를이 없었다. 걷다보면 작은 고통들은 먼 길을 걷는 힘겨움 속에 묻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멀고 긴 길은 내게 순종을 가르쳐 주었다. 그동안 내가 걸어갈 인생길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걸어갈 수 있다는 교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길을 걷다보니 길은 내가 만들어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을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르막이 보이면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내리막이 펼쳐지면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했다. 산이 보이면 넘어야 했고 마을을 만나면 마을을 지나야 했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어가듯 오직 푯대를 향하여(빌 3:14) 가야 할 내 인생의 길을 주어진 대로 순종하며 걸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주어진 길을 걸어야 한다는 깨달음은 순종보다는 ‘극복’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했던 나의 단단한 자아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내가 힘들었고 그래서 내가 요즘 화를 자주 냈었구나!’라는 생각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매일 순례의 일정은 안개 자욱한 새벽길을 나서는 일로 시작한다. 홀로 걷는 길이기에 고독이 친구다. 아침 안개 자욱한 길을 걷기 시작하는 순간, 주님과의 대화도 함께 시작된다. 걷기 시작한 지 열흘 째 되던 날, 이미 나의 발톱이 두 개 빠져 있었고 물집은 이곳저곳 솟아났고 고관절이 아파와 소염진통제를 먹고 걸었다. 걷기 13일째 되던 날 오전 10시쯤 길 가운데 홀로 있었다. 앞뒤로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탁 트인 길을 걸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시간을 갖고 있었다. 지나온 삶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내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성령의 손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나온 시간 속에 힘들었던 내 삶의 진솔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 입술은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는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 수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40대를 보냈다고 자부했던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니 나 자신이 그토록 안쓰럽고 가슴 아프게 느껴졌고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을 치며 회개의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너무나 아파왔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내가 내 열정으로 살았지 믿음으로 순종하며 산 것이 아니었구나! 아∼ 내가 이런 모습이었구나!”라는 생각에 감당할 수 없는 격정이 솟구쳤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살아는 왔지만 나 자신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내 마음을 쏟아놓고 또 쏟아놓았다. 그날 나의 회개 기도는 내가 잊어버리고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의 깊은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눈물로 ‘최선’이라는 내 인생에 깊이 뿌리박힌 인본주의를 통회하며 회개했다. 내 목적과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뜻과 계획을 붙들고 살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그 시간은 먼 곳에 있는 가족을 가슴으로 품는 시간이었고 내가 가족들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시간이 되었다. 길을 걸으며 내 자녀들의 인생길을 위해 기도했고, 우리 부부에게 펼쳐질 남은 인생길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꼭 가질 필요가 있다.

'남자 리뉴얼'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이의수 목사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