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피 가족

입력 2015-05-30 00:33

지난주에는 부모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3대가 같이 예배를 드린 것이다. 5월에 맞게 가정에 대한 말씀이 선포되었는데 본문이 출애굽기 4장 23∼26절이었다. 말씀을 들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이어져 이번 칼럼에서 그 내용을 적기로 마음먹었다.

성서에서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기를 피째 먹는 것을 금하였다(창 9:4, 레 19:26, 삼상 14:34). 의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피 안에 혈구가 존재함을 알고 있다. 적혈구는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한다. 백혈구는 우리 몸에 들어오는 이물질을 제거한다. 우리가 숨을 쉬며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숨을 내쉬며 나쁜 공기를 내보내는 것과 흡사하다. 멈추지 않는 역동성 혹은 활동성이 생명의 본질이다.

출애굽기 4장 26절에서 십보라가 그의 남편 모세를 ‘피 남편’이라고 불렀는데 어감이 자연스럽지 않고 생소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혈육’이나 ‘혈맹’이란 단어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며, 한자인 ‘혈’ 대신 우리말 ‘피’로 쓰는 ‘피붙이’나 ‘피를 나눈 사이’ 또한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남편이란 단어를 넣어 ‘피 남편’이라고 부르면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억지 단어가 돼버린다. ‘피 가족’이라는 단어 구사는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의 관계는 피 남편이라는 표현만큼이나 어색하지만 동시에 참으로 오묘하다.

태초의 부부인 아담과 하와는 같은 재료에서 만들어졌지만 우리들은 가급적 혈연에서 멀리 떨어진 상대를 찾아서 결혼한다. 인간의 형태는 서로 많이 달라서 혈액형과 조직이 일치하지 않으면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러므로 부부사이에는 장기이식이 거의 불가능하고 수혈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자식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반반씩 유전자를 받는다. 어머니는 그런 수준의 이질적인 태아를 열 달간 거부반응 없이 뱃속에서 키워내며, 부모 중 누구라도 자식에게는 자기 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 부모끼리는 혈액형 충돌로 수혈이 불가능하다 해도 자식과 부모와는 혈액형 충돌이 없다. 자식은 참으로 신비롭고 조화로운 생산물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부부는 혈육이 아니지만 자식이라는 혈육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부부는 가장 강력한 혈맹이라 할 수 있겠다.

혈맹이란 단어는 진짜 피를 나누는 것보다 의미와 가치로 더 혈육 같은 사이가 존재함을 잘 보여준다. 사실 남자의 성씨로 혈육을 인정하는 것은 사회문화적인 결과이지 의학적으로 지지되는 것은 아니다. 세대가 지속될수록 선조의 유전 형질은 계속 반으로 희석되므로 5, 6대만 내려가도 선조의 유전 형질과 별로 공통적이지 않다. 모계가 우성 형질인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부계 중심으로 성씨나 집안을 따지는 것을 보면 결국은 피로 이어받은 특성보다는 태어난 이후에 어떤 가정 배경에서 성장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피보다 진한 것은 양육인 것이다.

입양의 경우에서 부모와 일치하지 않는 어떤 특성을 계속 느끼면서 결국 사람은 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양육자나 입양아 모두 갖기도 하고 진료실에서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편견의 산물이다. 서로 다름은 피보다는 양육이 더 결정적이다. 부부가 닮는 것처럼 친자식이든 입양아든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 그렇지 않는 경우는 특이한 예외일 뿐이지 피가 물보다 진해서 그런 건 아니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