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탄저균 배달사고] 오산기지 실험요원 노출… 정부, 치사율 80%에 이르는데 반입 경로 설명 못해

입력 2015-05-29 02:30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상공에서 28일 A-10 지상공격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실험요원 22명이 탄저균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탄저균은 대표적인 생물무기 가운데 하나로 노출될 경우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물질을 주한미군이 왜 들여왔는지 처리 과정은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전에 우리 정부에 탄저균 반입 통고를 하지 않은 것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주한미군 측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27일 오산 공군기지에서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표본의 노출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신중한 예방조치를 실시했다”며 “감염 증상을 보이는 요원은 없다”고 밝혔다. 탄저균 표본이 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의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실험실 요원들의 훈련에 사용됐으며, 훈련요원 22명은 감염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ITRP는 ‘주피터’로 불리는 곳으로 탄저균 탐지와 정밀 식별, 조기경보, 생물감시 정보 공유 등 생물학전 대응 계획을 세우고 훈련하는 곳이다. 문제의 탄저균 표본은 유해물질 관리팀이 즉시 응급격리실에서 처분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탄저균 실험과정과 폐기처분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자칫 실험요원뿐 아니라 기지 내 장병과 민간인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반입한 것은 북한 생물무기 위협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탄저균 고유 유전자(DNA)를 탐지해 생물학전 위협 식별능력을 키우고 제독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그간 ‘한·미 공동 생물무기 감시 포털 체계’ 구축을 위해 탄저균 자료를 축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탄저균 같은 위험한 물질이 국내 반입됐지만 안전장치가 미흡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국방부나 질병관리본부는 탄저균 반입 통고를 받지 못했다. 주한미군주둔군(SOFA) 협정에 따르면 위협물질 반입 시 주한미군은 우리 질병관리본부에 통고해야 한다. 하지만 미군은 “그간 비활성화된 탄저균을 들여와 위협물질은 아니었다”며 “이번에도 비활성화된 것으로 알아 사전통보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질병 발견 즉시 한국 보건 당국에 통보한다는 규정이 있어 미군의 대응이 적절했느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탄저균은 활성화 상태에서 노출될 경우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위협적이다. 훈련이나 연구 목적으로 전달할 경우 반드시 죽거나 비활성화된 상태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스티브 워런 미 국방부 대변인은 2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유타주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이 캘리포니아와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옮겨졌고 주한미군에도 전달됐다”고 했다. 탄저균은 민간업체가 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본부는 뒤늦게 현지 조사에 나서 생물테러 담당자 등을 오산기지에 파견해 ITRP의 내부 멸균상태와 탄저균이 밀폐용기에 담겨 적법하게 배송됐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