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2013년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부터 예고된 사안이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명시하는 문제는 쟁점이 됐다.
결국 법안에는 ‘정년 연장 사업장은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한다’는 어정쩡한 표현이 담겼다. 갈등을 조정하거나 어느 한쪽을 제대로 설득하지도 못한 채 법부터 통과시킨 셈이다.
정년 연장 의무화가 시작되는 2016년을 앞두고서야 임금피크제 도입은 다시 발등의 불이 됐다. 정부는 지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내세운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서 이 사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년 고용 절벽 해소를 위해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 의무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미미하자, 28일 노조 합의 없이도 임금피크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정부 지침을 발표키로 하면서 갈등이 다시 극대화된 것이다.
그러나 임금피크제에 대한 노동계와 정부, 기업 인식 차는 여전히 극명하다. 정년이 닥치기 전에 임금을 단계적으로 깎는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에게 불이익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년 연장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취업규칙 변경이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 요건인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사회 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정부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실적으로 민간 기업 대부분이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하는 실정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엄연히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이라는 것이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는 것은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만 줄어들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노후 자금인 퇴직급여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퇴직급여는 근로자 퇴직 직전 급여를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고령화 추세 속에서 노후 자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노동계 동의 없이 도입하는 것은 근로자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노사정 논의에 참여했던 한 공익위원은 “국회 논의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사안을 노사정 협의라는 이름으로 답을 내려고 한 것부터가 또 다른 미봉책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적 기준이 아닌 정부 지침은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놓더라도 통상임금과 같은 지난한 법적 분쟁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임금피크제 노·정 충돌] 충분한 논의 없이… 어정쩡 ‘의원입법’ 결국 갈등 폭발
입력 2015-05-29 0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