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행전] ‘참살이힐링마을’ 이호영 목사, 가위손에서 정원사로… 믿음의 씨앗, 은혜로 피었습니다

입력 2015-05-30 00:43
전설적인 ‘가위손’에서 힐링 숲을 가꾸는 정원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호영 목사가 18년 동안 가꿔온 산야초 숲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은퇴 목회자, 암 환자들, 쉼이 필요한 이들을 섬기기 위해 지금껏 홀로 ‘참살이힐링마을’을 가꿨다. 안성=강민석 선임기자
이호영 목사가 유두형 집사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유 집사는 산야초효소가든 식당 조리사로 이 목사의 사역을 돕고 있다.
"이건 망촛대라고 하는 건데, 된장에 무치면 감칠맛 나요. 저건 산딸기예요. 성전을 오르다가 산딸기 따먹고, 옆에 있는 뽕잎도 따요. 저건 인동초, 으름, 다래순입니다. 여기 오디 한번 잡숴 봐요."

보기엔 그저 그런 풀 같은데, 그의 눈엔 무엇 하나 허투루 이뤄진 게 없다. 경기도 안성 보개면 '참살이힐링마을'에는 이런 산야초가 120여 가지나 된다. 주인장 이호영(55) 목사가 18년 전 1만3223㎡(약 4000평) 대지에 나무를 심고 가꾼 열매들이다. 이 목사는 "나는 심기만 했을 뿐 자라고 거두신 이는 하나님"이라며 "다 들풀 같아도 먹으면 몸에 좋은 보약"이라고 말했다. 참살이힐링마을에 가면 '산야초효소가든'이라는 식당에서 건강음식을 맛볼 수 있다.

지금은 깊은 산골에서 사람들에게 치유와 쉼을 주기 위해 숲을 가꾸는 섬김이로 살고 있지만, 원래 그의 직업은 전설적인 헤어디자이너였다. "갈퀴로 돈을 긁어모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를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신학교에 들어가고 2004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27일 참살이힐링마을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부(富)가 보장되는 '가위손'을 버리고 산야초를 키우는 '정원사'로 사는 이유를 들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

20대 초부터 미용을 해온 그는 선배와 함께 서울 서초동에 ‘이홍머리방’을 열었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지었다. 선배 ‘홍 선생님’은 미용 기술이 뛰어났다. 특히 손님이나 직원들을 대하는 데 있어 배울 점이 많았다. 틈틈이 예수님도 전했다.

“제가 어렸을 때 잠깐 교회에 다닌 적은 있지만, 무엇 때문인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홍 선생님을 보면서 ‘아, 저런 분도 계시네?’ 생각했죠. 늘 겸손함을 잃지 않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휴일이면 보육원이나 양로원에서 미용봉사를 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미용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보육원에 간 첫날,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좀 줬어요. 그런데 그의 형이란 아이가 갑자기 동생을 밀쳐내더니 제가 준 간식을 뺏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이렇게 말하데요.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에요. 그 다음으로 나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아저씨 같은 사람이라고요. 우리가 그렇게 불쌍해 보여요? 교회에서도 사랑 사랑하면서 이렇게 먹을 거 주고 나면 나중에 찾지 않아요. 아저씨도 이렇게 주다가 안 올 거잖아요. 왜 먹을 거 주면서 사진 찍어요? 왜 우리는 계속 버림만 받아야 해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거 같았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삶의 전환점이 되다

30대 초반 그는 사랑을 나누는 헤어디자이너로 유명세를 탔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 같은 자선 헤어쇼를 열면 1000명이 넘게 모일 정도였다. 그날도 자선 헤어쇼를 계획했다. 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에서 말이다.

“방송에 나올 정도로 홍보를 많이 하고 준비했지요. 1500명 이상 참석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행사 한 달 전쯤에 교통사고로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뒷일을 수습하느라 쇼를 두 달 뒤로 연기했지요. 그런데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겁니다. 헤어쇼를 그냥 진행했다면…. 아찔하죠.”

그때 그는 생각했다. ‘아, 이게 뭐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낡은 성경책. 예전에 ‘홍 선생님’은 일하는 틈틈이 이 성경책을 읽었다. 가끔 무슨 내용이 써있는지 궁금해 하곤 했다. 그는 일을 미루고 성경책과 바리캉(머리를 깎는 기구), 50만원을 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방황하다 도착한 곳이 한얼산기도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목사님 말씀을 듣는데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물질적인 풍요로도 채워지지 않던 제 마음이 비로소 후련해졌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서원했어요. ‘하나님, 제가 지금 이 땅에서 저 땅으로 내려가면 돈 버는 일 안 하고 어둡고 병든 자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말입니다.”

운영하던 5개의 이홍머리방을 모두 지인들에게 넘겼다. 일을 하면서 만난 이들과는 연락을 끊고 지냈다. ‘홍 선생님’이 목회자 사모가 됐다는 소식도 한참 뒤에 들었다.

“물질을 좇는 삶은 물 위를 걷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슬아슬해요. 풍덩 빠지잖아요. 하지만 믿음 위에 세워지면 그런 두려움은 싹 사라져요. 그래서 믿음을 좇기로 결심했지요.”

97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신학교에 들어갔다. 이홍미용선교회를 통해 무료로 제자들도 키웠다. 조건은 딱 하나. ‘선교에 힘쓰자’는 거다. 그렇게 지금껏 키운 제자들이 2500여명. 개별적으로 제자들에게 연락해 함께 미용봉사를 하러 다닌다. 외국인근로자센터, 알코올중독자·정신질환자 요양병원, 군부대, 양로원 등 한 달에 평균 10곳으로 봉사활동을 다닌다. 흑산도, 홍도 등 섬 선교를 한 지도 벌써 12년째다.

섬기고 나누기 위해 숲을 가꾸다

신학교에 들어가고 처음 낙도로 선교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눈물 뿌리며 기도하는 한 은퇴 목사를 만났다. 궁금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태우며 기도하는지….

“목사님,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노목회자는 “내가 갈 곳이 없다”고 답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은퇴하신 목사님, 선교사님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그때부터 악착같이 땅 500평만 달라고 떼쓰듯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큰 대지를 안성에 허락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를 고민할 때 하나님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주셨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

그는 나무와 풀을 가져다 심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키우고 열매를 맺게 하셨다. 이 목사는 섬김의교회, 황토방, 편백나무방, 게스트하우스, 식당, 미용실도 지었다. 재정이 넉넉지 않다보니 이 모든 시설을 손수했다. 건설 현장에서 쓰다 남은 자재나 버려진 가구들을 얻어와 짓다보니 천장에는 곳곳에 못 자국이 나 있다.

“가끔 오시는 분들 중에 환경만 보시고 탓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면 좀 안타까워요. 여기 보이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이런 숲을 어디서 만나겠어요?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복인데 말입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 눈에 바벨탑이 쌓여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참살이힐링마을은 활짝 열려 있다. 최근까지 암 환자 가족이 황토방과 편백나무방에서 묵었다. 이 목사의 꿈은 소박하다. 은퇴 목회자, 쉼이 필요한 선교사, 몸이 아픈 이들과 산야초를 가꾸고 건강음식을 나누며 친환경적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 섬길 수 있을 때까지 섬기는 게 숲을 가꾸는 이유다(참살이힐링마을 031-676-1009).

안성=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