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초동 대응 구멍] 국경 넘은 ‘의심 환자’… 韓·中서 수백명 불안에 떤다

입력 2015-05-29 02:38

보건 당국의 촘촘하지 못한 역학조사와 안이한 대응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일파만파로 키우고 있다. 메르스 감염 의심자인 40대 남성은 정부 역학조사의 그물에서 벗어나 국경을 넘었다. 한 사람으로 인해 국내에서만 수백명이 불안감에 떨어야 할 처지가 됐고, 중국 보건 당국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격리 관찰 대상 밖에서 추가 감염자가 나왔다는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출국 40대 남성, 역학조사 명단에 없는 사람=세 번째 메르스 환자 C씨(76)의 아들 H씨(44)는 정부의 메르스 역학조사 대상자 명단에 이름이 없던 사람이다. 그는 C씨가 첫 환자 A씨(68)에게서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16일 4시간여 동안 그들과 함께 병실에 있었다.

그러나 보건 당국은 그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C씨와 딸 D씨(네 번째 감염자)가 H씨의 병실 방문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당 병실이 감염 장소로 지목된 만큼 진술에만 의존하지 말고 좀 더 면밀한 조사를 벌였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H씨는 지난 19일 발열 증상이 나타나 21일 보건소를 찾은 데 이어 22일과 25일 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아버지 C씨가 2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므로 스스로 감염 가능성을 인지했을 시기다. 그는 두 차례 응급실 방문 때 각각 37.7도와 38.6도의 체온을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메르스 감염 사실은 의료진에게 밝히지 않았다. 25일 동행한 아내가 이 사실을 알렸고, 의료진은 중국 출장을 만류했다. H씨는 이를 뿌리치고 26일 출국, 홍콩을 경유해 중국 본토에 입국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휴대전화 로밍을 하지 않아 H씨와는 문자메시지로만 연락했다. (출국했어야 할)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H씨는 현재 중국 대형병원의 1인실에서 검사 및 치료를 받고 있다. 국제 보건의료계의 관행에 따라 치료가 끝나기 전에는 귀국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건 당국은 H씨의 감염 가능성을 병원의 신고로 27일 알았다. 해당 병원이 감염 가능성을 안 지 이틀이나 지난 시점이다. 당국은 메르스 감염 의심자는 신속히 신고하도록 전국 의료기관에 알렸지만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항공기 근접 탑승객 28명 추적 중=중요한 건 H씨가 감염자로 확인됐을 경우다. 그는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난 이후 거리와 공항 등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감염된 상태였다면 지역사회로 전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건 당국은 일단 H씨의 아내와 그와 접촉한 의료진 10명을 자가격리 조치했다. 또 중국에 갈 때 탄 국적 비행기의 탑승객 명단(166명)을 확보해 H씨 앞·뒤·좌·우 세 열에 앉았던 탑승객 28명을 추적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내국인 80명, 외국인 78명, 승무원 8명이 탑승했다”며 “귀국한 승무원 3명은 격리 조치했다”고 말했다. 직장 동료 180여명을 대상으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방역 그물망 밖에서 감염자 발생=보건 당국은 이와 별도로 감염자 2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국내 환자는 모두 7명으로 늘어 한국은 중동을 제외한 국가 가운데 메르스 최다 발생국이 됐다.

문제는 추가된 2명 중 F씨(71)가 지금까지 당국의 격리 관찰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F씨는 첫 환자인 A씨와 같은 병동에 있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병실 거리가 약 10m 떨어져 밀접 접촉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그를 제외했다. F씨는 21일 퇴원한 뒤 22일부터 발열 증상이 나타나 검사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면서 “검사 과정에서 동선이 같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세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건 당국이 처음부터 ‘밀접한 접촉’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국은 메르스의 전파 가능성이 낮다며 밀접 접촉자에 대해서만 자가격리 등 조치를 취해 왔다.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해 국민께 대단히 송구스럽다”면서도 “감염 대응에 대한 평가는 후일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받겠다”는 입장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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