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에도 여름이 있다. 화창한 날씨에 꽃도 핀다. 하지만 9월 첫째 주가 되면 눈이 내리고 긴 겨울이 시작된다. 정유업계의 올해 1분기 실적이 조금 나아졌지만 실적호조는 잠깐 왔다가는 ‘알래스카의 여름’일지도 모른다. 정철길(61) SK이노베이션 사장은 28일 “다시 찾아올 ‘겨울폭풍’에 대비해 올해가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정유업계의 맏형인 정 사장이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본사 사옥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최근 실적개선 흐름에 대한 일각의 낙관론을 경계하며 “뼈를 깎는 구조적 혁신으로 글로벌 신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수익·사업구조 혁신 등을 통해 당면한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겠다”며 “현재 11조원인 기업가치(시가총액)를 2018년까지 30조원대로 키우고 글로벌 톱 30위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정 사장은 현 경영환경을 ‘구조적 위기’로 진단했다. 중국·유럽 등 주요 시장의 저성장에 따른 수요 감소, 셰일 혁명과 글로벌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수출형 사업구조를 지닌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과거와 다른 방식의 고민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가치(Value) 중심 경영’을 위기극복 해법으로 제시했다. 수익·사업구조 등의 혁신을 통해 투입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고객들이 경험하는 가치는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석유개발(E&P) 부문은 지난해 인수한 미국 오클라호마와 텍사스 소재 셰일 광구를 인근 지역으로 확장하는 ‘유에스 인사이더(US Insider)’ 전략을 수립했다.
화학 부문은 기존 중국 중심의 성장전략,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국 최대 국영석유회사 시노펙과 손잡고 설립한 ‘중한석화’처럼 성공적인 합작 모델을 계속 만든다는 것이다.
석유사업 부문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과 파트너십을 강화해 안정적 원유도입 기반을 다지기로 했다. 배터리 부문은 유럽 유명 자동차 회사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등 전기차 시장 확대를 꾀할 계획이다.
정 사장은 다만 해외 기업과의 합작이나 큰 투자의 경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사와 판단이 큰 역할을 차지하는 만큼 최 회장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안정적 재무구조 확보에도 전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올 1분기 말 현재 6조8000억원인 순차입금 규모를 지속적으로 줄이고, 자회사 상장이나 비핵심 자산 매각과 같은 자산 유동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SK이노베이션 정철길 사장 “위기를 기회로 수익구조 혁신… 기업가치 3년내 3배로 키울 것”
입력 2015-05-29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