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는 빙벽 사이의 절벽 같은 틈새다. 설산 등정의 가장 큰 난관이다. 살얼음이나 눈으로 덮여 있어 모르고 지나치다 빠지면 살아나기 어렵다. 천길 낭떠러지만큼 깊은 곳도 적지 않다. 위는 넓어보여도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고 뾰족한 얼음기둥이 많아 창을 박아놓은 듯한 함정이나 다름없다. 전문 셰르파나 투어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인생에도 크레바스 시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의 경우 퇴직 후 국민연금 수령 시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은퇴하면 가처분소득은 급격히 줄어든다. 이때 국민연금은 가뭄의 단비다. 그러나 원래 60세였던 연금지급 연령이 갈수록 높아져 2033년이면 65세가 된다. 퇴직 후 급격한 소득절벽을 절감하는 직장인이 많을 것이란 의미다.
대안의 하나가 사적연금이다. 최근 특히 중장년 직장인들 사이에 개인형 퇴직연금(IRP) 열풍이 일고 있다. 금융권에서 ‘IRP 재테크’란 말이 나올 정도다. IRP는 직장인이 노후 자금을 스스로 쌓거나 혹은 퇴직금을 적립하는 퇴직연금 계좌다. 지난 3월 말 기준 적립액은 8조1372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6.8% 급증했다.
첫 번째 인기 비결은 세제 혜택이다. 올해부터 IRP의 세액공제 한도 300만원이 새로 도입됐다. IRP 이외 사적연금 세액공제 한도 금액 400만원을 포함할 경우 직장인들은 연말정산에서 최대 115만5000원을 환급받는다. 엄청난 혜택이다. 또 다른 이유는 퇴직 후 소득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물러나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은퇴 크레바스를 메울 수 있다. 최소 5년 가입하고 55세 이상이면 연금을 받는다.
물론 약점도 있다. 중도 해지하면 환급액보다 많은 세금을 토해내야 한다. 연금수령 기간도 최소 10년 이상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일보 옆 KB국민은행 창구 직원은 “얼마 전부터 IRP를 문의 하거나 가입하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며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은퇴 크레바스
입력 2015-05-29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