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은 이 땅에 묻고 하늘에서 행복하게 사소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 창원서 별세

입력 2015-05-29 02:17
28일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공식 사죄도 받지 못한 채 또 한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효순 할머니는 27일 오후 7시50분쯤 창원 파티마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91세.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2명으로 줄었다. 경남에는 국내 최고령 김복득(97) 할머니를 비롯해 7명의 할머니만 생존해 있다.

이 할머니는 경남 의령군에서 태어나 1941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빨래터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 이른바 ‘처녀 공출’로 강제 납치된 것이다. 할머니는 트럭을 타고 부산으로 이송된 뒤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갔다.

이어 대만으로 끌려가 1년가량 지낸 뒤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에서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할머니는 21살에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산과 마산에서 식당 일과 식모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 길음동 등에서 줄곧 홀로 지내다 2007년 여동생이 살고 있는 창원으로 이사했다.

이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배상하지 않는 데 대해 “즈그들 뺏기기 싫으니까 그렇지”라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오빠도 일본군에 강제 징용됐다가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코에 산소공급기를 끼고 생활해온 이 할머니는 간간이 수혈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간 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들어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다. 이 할머니의 장례는 고인의 희생을 기려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파티마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여동생과 조카가 자리를 지켰다. 여동생은 “평소 조용히 사셨던 분으로 가슴속 맺힌 한을 풀어드리지 못한 채 돌아가신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종대 공동장례위원장은 “일본의 반성이나 공식적인 사죄도 받지 못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상황에 역사의 비애를 느낀다”며 “일제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지난번 뵀을 때, 건강하게 지내시라고 했는데 끝내 돌아가셨다”며 “전시 여성 인권과 행복을 말살한 반인륜적 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마산 창원 진해 시민모임은 29일 오후 7시 빈소에서 추모식을 개최한다. 발인은 30일 오전 7시, 장지는 창원시립상복공원이다. 창원=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